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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마지막회] 성장의 증거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영적인 성장 마지막회] 성장의 증거

En Hakkore 2024. 4. 9. 11:25

그리스도인의 성숙의 상태에 관한 몇가지 특징(2)

인내

여기에서 우리는 어떤 성격상 생겨나는 자연적인 평온함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 안에 만들어졌던 영적인 은혜 사이를 구분해야만 하겠다. 여기서 우리가 또한 주지해야 할 것은 영적인 인내란 수동적인 면과 능동적인 면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수동적으로 말해서 이것은 고난을 당하여서 묵묵히 즐겁게 순종함을 말하며 "그물에 걸린 영양같이"(사 51:20) 사납게 구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요 18:11)에서 보여진다. 능동적으로 말해서 이 말은 의무를 지속적으로 감당함을 말하며(히 12:1),

"전쟁의 날에 후퇴하지"(시 78:9) 않음을 말한다. 이 말은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않는 것을"(살후 3:13) 지칭한다. 인내는 신자로 주님께서 그에게 무엇을 부과하시든지 온순하게 감내하게 함을 말한다. 그것은 신자로 하나님의 구원시키시는 때를 조용히 기다리게 하신다.

그것은 신자로 힘을 부추겨 어떤 시련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의무를 충실히 감당하게 한다. 그것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믿음의 시련이며"(약 1:3) '환난'(롬 5:3)인고로, 인내란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에게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우리는 영적인 사려를 진작시킴으로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 갈 수 있다.

겸손

복음적인 겸손은 나의 마음 중심에 무지와 무능과 악함을 깨닫는 데 있다.♡ 어떤 신자들은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읽고 그 내용에 더욱 친숙해질 때, 그리고 믿음으로 가르침을 잘 받을 때 그는 지식으로 교만해지기 쉽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말씀을 좀더 깊이 궁구함으로 거기에 자기의 지식을 초월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게 될 때에, 그리고 신령한 것들에 대한 지적인 정보와 이것들의 체험적이고 변화시키는 지식 사이를 구분하게 될 때에, 그는 "여호와여 내가 알지 못한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혹은 "주의 율법으로 내게 가르치소서"라고 부르짖을 것이다.

그가 은혜 가운데서 자라날 때, 자신의 무지함을 점점 많이 깨닫게 될 것이며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전 8:2)고 고백할 것이다. 성령께서 그 마음을 열어 줄 때 그는 거룩함을 더욱 사모할 것이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더욱 본받으려 할 때 자신의 거기에 이르지 못했음을 깨닫고 신음할 것이다.

어린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힘으로 많은 일을 하려 하지만, 나중에 자신이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사람은 자신을 비워 스스로 낮아지며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그 얼마인가를 깨닫고 경이에 사로잡힌다.♡

관용

완고하고 당파심이 강하며 절제치 못하는 마음은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협소한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우리 중 대부분은 거기의 구성원들의 상이한 점들을 거의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친숙해지면 그들의 외모 이상으로 그들의 마음상태를 파악하게 되며 그들의 지방적인 특수한 악센트 이상으로 그들의 성격을 알아 버린다.

그때 상당한 부분에 있어서 그들의 생각과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한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있지만, 그들은 단순히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으며 이 부분적인 것도 어떤 사람이 아는 것과 다른 사람이 아는 것과의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모든 성도들에게는 성령이 내주하지만, 성령께서는 그들 안에서 일관된 방법으로 역사하지 않으시며 동일한 은사를 주신 것이 아니다(고전 12:8-11). 그러므로 "사랑 안에 서로 용납함"(엡 4:2)이 필요하며 나의 견해를 달리하는 자들을 무시해서도 안될 것이다.♡

은혜 안에서의 성장은 온화함과 관용의 정신으로 나타난다. 내가 내 자신에게 대해 주장할 수 있음같이 다른 사람에게도 판단할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허용해 주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본질적인 일치에서 비본질적인 자유에서, 범사에 관용을 베풀라"는 공리에 동의할 것이다.

만족

이것은 영적인 또 한 가지 덕성으로서 우리의 욕망을 현재의 분깃에 제한시킴을 말하며 이것으로 자족하고 충족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불평이나 과도한 욕망이나 엉뚱한 관심사는 상반된 것이다.

불평이란 하나님 섭리에 불만족을 표시한 것이며, 엉뚱한 관심은 미래에 대해 하나님을 불신하는 행위이며, 과도한 욕망이란 하나님이 나에게 할당해 준 것에 만족해 하지 않음을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아시며 이 사실을 우리가 깨달을 때 그의 사랑과 지혜에 대해 우리는 절로 감사가 나올 것이며 그에게 기쁨이 되는 것으로 우리도 또한 기쁨을 누린다.♡

만족이란 세상에서 기울어짐을 말하며 주님 안에서 기쁨을 누림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내가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빌 4:11)고 고백하였다.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이 말에 주석을 붙이기를 바울이 이 교훈을 배운 것은 "가말리엘 문하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라고 했다.

이것은 그가 거기에서 모든 것을 요구해 받은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본래적으로 불안정하고 초조하며 다른 사람에 대해 시기심이 가득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전폭적으로 맡기고 그의 선하심을 온전히 신뢰할 때, 우리 마음에는 평화가 깃들고 우리 심령에는 안식이 임할 것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으리라.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가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시 4:7)♡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314

■ 에필로그 😀
아더 핑크 목사님의 영적인 성장 시리즈 5권(영적인 연합과 친교, 영적인 기도, 영적인 실천, 영적인 구원, 영적인 성장)을 3년7개월간 나눔하면서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미숙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된 계기였음을 감사합니다. 2년째 이어지는 코로나팬데믹의 어수선함속에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성장이란 그것이 나중에 명백히 드러날 때까지 말이 없으며 감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성장이란 점진적이며 완전한 발전은 하루 아침에, 혹은 그 해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증거가 나타나기 전까지 시간이 요구된다. 우리는 이 성장의 척도를 감정으로 가늠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의 안경으로, 그리고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이 표준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어떠한 조건에도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자라나고 있는지 점검해 보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이전에 내 자신을 부인했던 것보다 지금 더욱 그렇게 하고 있는가?
나는 과거에 이 세상의 유혹에 말려들었던 것보다 지금 덜 그렇게 하고 있는가?
나의 매일의 생활이 성경의 교훈으로 지배받고 있는가?
그는 나의 가장 필요한 것을 아신다고 확신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내 자신을 전폭적으로 맡기는가?
하나님을 믿는 나의 확신이 점점 자라나고 있으며 내 자신과 나의 모든 문제를 그의 능력의 손에 맡기고 있는가?

올해도 남은 시간 잘 마무리 하시고 새해 더욱 무릎으로 걷기를 소망합니다. 매일 성령충만하소서♡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계 22:11,14절)

Happy New Year to one and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