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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15] 초기의 경험들 1(사무엘상 18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15] 초기의 경험들 1(사무엘상 18장)

En Hakkore 2024. 2. 15. 10:46

여인들의 노래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삼상 18:6-7).

이 사건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영적으로 얼마나 낮은 상태에 있었는지 잘 보여 준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우리의 영혼의 상태에 대한 지표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요일 4:5).

오늘날 믿음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때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엡 4:29)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슬픈 일이지만 놀랄 일도 아니다. 내가 그것을 "놀랄 일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들 중 대다수가 성결의 능력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여인들이 골리앗의 죽음과 블레셋의 패배를 축하하며 사용했던 말은 그들의 마음과 정신이 오직 승리를 거둔 사람에게만 쏠리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그들의 생각 어디에도 하나님은 없었다"(시 10:4, God was not in all their thoughts, KJV-역주).

아,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상황과 얼마나 자주 부합하는가! 우리는 영웅을 숭배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기독교 자체도 이런 악한 정신에 물들었다. 모든 곳에서 인간이 칭송과 찬미를 받는다. 세상에서뿐 아니라 교회와 사경회와 기독교 관련 정기간행물들 안에서조차 그러하다.

이것은 사람들이 사경회의 강사들을 홍보하고, 그들의 사진을 인쇄해 돌리고, 그들에게 아첨하는 것을 통해 잘 드러난다. 오늘날처럼 인간을 신으로 받드는 시대에는 모든 거대한 종교 집회의 강단 위에 "너희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라"(사 2:22, 표준새번역)는 말씀을 큰 글자로 새겨 둘 필요가 있다.

오늘날 성령이 탄식하시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도대체 오늘날 우리가 어디에서 충성스러운 저항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은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이것은 우리가 출애굽기 15장에서 발견하는 내용과 얼마나 큰 대조를 이루는가! 엘라 골짜기에서 일어난 일(삼상 17:19)보다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에서 목격했던 애굽 군대의 몰살(출15:4)이 훨씬 더 큰 사건이었다. 그러나 거기에서 우리는 이 이스라엘 여인들의 어미들이 모세를 찬미하거나 그의 업적을 찬양하는 모습을 찾지 못한다.

다만 우리는 미리암이 자기와 함께했던 여인들을 향해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라다"(출 15:21)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을 뿐이다. 거기에서는 여호와께 그분에게 합당한 지위가 주어졌다.

이스라엘이 거둔 승리는 인간이라는 도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사랑하는이여, 오늘날 일반화된 악한 관습이 아무리 그것과 정반대 방향으로 나갈지라도, 당신은 모든 영광을 오직 그것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에게만 돌리라.💕

사울의 질투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삼상 18:8).

여인들의 노래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었을 뿐 아니라, 또한 지각없는 짓이기도 했다. 우리가 본문 5절에서 보았듯이, 다윗은 "지혜롭게 행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딸들의 행위는 그의 행동과 날카롭게 대비되었다. 이스라엘의 여인들이 다윗을 자신보다 높이는 것은 오만한 마음을 지닌 사울이 견딜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여인들의 "육"(flesh)의 행위는 사울의 육에 영향을 주었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통해 이루신 일을 기뻐할 수 없었던 사울은 여인들이 자기보다 다윗을 높이 칭송하는 소리를 들을 때 질투심에 휩싸였다. 그는 자기가 첫째가 아니라 두 번째라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다.

혹자는 다음과 같이 묻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어째서 하나님은 쉽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음에도 이 여인들이 사울보다 다윗을 높이는 노래를 하는 것을 억제하지 않으시고, 그로 인해 다윗이 왕에게 질시를 받게 하셨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대답이 가능할 수 았다.

즉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을 촉진하고 다윗의 영적 유익을 장려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종종 타락하고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 안에 있는 것을 더 잘 드러나게 하시기 위해 그분의 억제하는 손길을 거둬 가신다. 만약 그분이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들 간의 차이가 그렇게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다윗은 사람들에게 아첨을 받고 있었다. 아첨은 아주 위험한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지혜롭게 또한 자비롭게 종종 누군가를 시켜 우리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고 나쁜 말을 하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교만한 마음이 부당하게 양양해지는 것을 맏으신다.

"모든 위대하고 선한 일을 한 사람은 자기 이웃들로부터 질시의 대상의 될 것을 예상해야 한다. 그 어떤 특별한 구별됨이나 탁월함을 얻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그것은 그것을 얻은 자를 증상과 적대감 그리고 아마도 가장 치명적인 결과들에 노출시킬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그런 시련은 매우 유익하다. 그런 사람은 그들에게 부여되는 명예에 대한 균형추의 역할을 하고, 또한 그의 교만이 증대되고 세상에 집착하는 것을 막아 준다. 그런 시련은 신앙, 인내, 온유함,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 등과 관련해 그들을 훈련시킨다.

그런 시련은 그들에게 가장 어려운 환경에서 지혜롭고 적절하게 행동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그들의 온유한 보상과 진실로 거룩함을 추구하는 성향을 보여 줄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 준다. 그런 시련은 그들이 여호와께서 얼마나 신실하게 그들의 적들을 제어하시고, 그들의 친구들을 일으키시고, 그들에게 그분의 은혜로운 보호를 제공하시는지를 더 많이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그런 시련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처하게 될 상황에 대비하게 할 뿐 아니라, 그런 상황들을 행해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왜냐하면 적당한 때가 되면 그들의 겸손의 미덕이 두 배의 광채를 지니고 빛을 발할 것이기 때문이다"(T. Scott).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