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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124] 성장의 증거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영적인 성장 124] 성장의 증거

En Hakkore 2024. 4. 8. 11:53

1. 육을 죽이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고 당신이 거기에서 어떠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확인해 보라.

이 일을 이루지 못하는 한 그리스도인의 생애 가운데 성장이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서 내재하는 죄를 제거하지 않으신다. 그는 다만 그들에게서 육신의 정욕을 도모하지 말라고, 그것의 역사를 죽이라고, 그것의 유혹을 부인하라고 요구하신다.♡

그의 요구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골 3:5)는 것이며,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엡 4:22)는 것이며,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이며, "너희 스스로 우상을 멀리하라"(요일 5:21)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과하신 일생에 걸친 과업이다. 우리가 육체에 남아 있는 한, 이 육체는 안쪽에서 우리를 거스릴 것이며 세상은 바깥쪽에서 거스릴 것이다. 우리가 이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느슨해진다면, 죄와 사단은 우리에게서 더욱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하게 하심을 따라 더욱 힘쓴다면 이 모든 시도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 모두는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실망을 주는 요소일 뿐이라고, 정직하게 말한다면 이 모든 시도는 철저히 헛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나는 하느라고 했는데도 정욕이 나를 지배하며 나는 계속헤서 죄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모든 노력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곳에서도, 당신이 이렇게 하면 내재하는 죄는 힘을 잃게 될 것이고, 당신의 정욕은 점점 약화될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았다. 이 주제에 대해선 대부분이 오해하고 있다. '죽이다'(mortify)는 이 말은 '사형시키다'는 말을 의미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바는 이 말이 단지 비유적으로 쓰였다는 것이며 문자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육체에 적용되는 이 말이 육체가 아닌것에 대해 적용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가능한 방법을 통하여서도 심지어는 성령의 도움을 통해서도 이 정욕의 생명을 끊지 못한다. 이 정욕은 가끔 그를 의식하는 가운데 나타나지만, 곧 머지않아 그는 이것이 얼마나 활동적이고 자극적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모든 세력을 얻어 얼마나 기승을 부리는지 마지막 순간까지 그 본성이 얼마나 망칙한지를 증거로 남겨 놓았다. 그러면 이 '죽이다'(mortify)는 말의 의미를 보다 자세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내재하는 죄를 죽이거나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정욕을 끊어버리는"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이것은 정욕을 당신의 애정에서, 당신의 의도에서, 당신의 결심에서, 당신의 노력에서 죽이는 것이다.♡ 우리는 죄를 미워함으로 죄를 죽이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라"(요일 3:15). 이와같이 우리가 참으로 우리의 죄를 미워함으로 이것들을 도덕적으로 죽여 버리는 것이다.

죄가 그리스도인 위를 주관할 때 그는 이것을 슬퍼함으로 증거를 삼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죄가 그의 안에 역사할 때 그것을 슬퍼함으로 그것을 진정 미워한다는 증거를 나타낸다. 그의 본질적인 부패와 모든 죄책이 솟아나올 때마다 그것을 억누르는 것이 그의 결단이라면, 그의 의지를 용납하시는 주님 앞에서 그는 이것들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신자가 그의 죄를 하나님 앞에 갖고 나와 참회하며 자복함으로 이것들을 떨쳐 버린다면, 그는 이것들을 '죽이고'있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에게 죄지음에 대해 진정으로 슬퍼하고 미워하고 자인한다면, 그는 곧 '원하는 이것을 행치 아니한다'(롬 7:15) 라고 한탄할 것이다

"여호와는 사람의 보는 것과 같지 아니하시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느니라"(삼하 16:7). 특별히 이 말씀은 내용이 있어서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만일 남자가 어떤 약혼한 처녀를 들에서 만나서 강간하였거든 그 강간한 남자만 죽일 것이요"(신 22:25).

다음 구절에서 우리는"처녀에게는 아무 죽일 죄가 없느니라"는 말씀을 본다. 그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소리를 질러도 구원할 자가 없었다". 이제 이것을 우리에게 영적으로 적용시켜 보자.

만약 어떤 신자가 하나님과 자신의 마음에 용납되지 못할 어떤 시험을 만나 그것을 거부하였지만 중과부적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하자. 이 경우 그에게 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시험을 받아들이고 마음에 영합하여 그것을 좋아하는 불신자의 경우와는 완전히 판이하다. 성령이 아리마대 요셉에 대해 기록했던 것을 살펴 보자. 그는 그리스도를 죽이기로 가결한 공회의 회원이었지만, "그들의 행위와 충고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눅 23:51)

"성화란 무엇인가? 성화란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택하신 자들에게 그의 성령의 놀라운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적용시키시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들의 전인을 새롭게 하시는 것이다.

생명에 회개의 씨앗을 심으시며 다른 모든 구원하는 은혜를 그들 마음에 주입하시사, 이 은혜로 싹이 특고 자라나고 힘을 얻게 하시며, 죄에는 죽고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로 일어나게 하신다"(Westminster Catechism).

우리가 강조하는 이 말로 많은 사람들은 결코 성화되지 못했다고 생각하여 근심하며 슬퍼할 것이다. 그러나 주지해야 할 바는 '죄가 그들 안에서 점차 죽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죄 가운데 점점 죽어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상이한 문제이다.

그리스도인은 위에서 지적한 바와같이 그들의 집착하고 의도하고 노력하는 때에 죄 가운데 죽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정욕이 점차 세력을 잃는다"란 말을 성경상에서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찾지 못한다.

우리는 '죽이다'는 이 말이 그리스도인의 죄와의 투쟁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하려고 노력해 왔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것은 신자가 이러한 본질적인 사역에서 진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실패를 유발시키는 것들을 완강이 거부함으로써 이 과업에 부지런히 힘쓸 때, 그는 진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 말씀으로 지배받으면서, 자신의 이해력을 의지하거나 공공 여론에 의지하지 않음으로 진보를 이룩한다. 그때 그는 비로소 세상적인 정욕이나 조악한 악을 정복하며, 마음의 냉랭함, 불신앙, 교만, 자만, 절제치 못함을 극복한다. 그때 그는 육체나 마음의 모든 정욕에서 자신을 깨끗케 한다. 간단히 말해서 그가 이 모든 것에서 마음을 지켜 보다 엄격히 다스려 나갈 때, 은혜 안에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