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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71] 요단 강가에 서서(여호수아 3:1-6)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71] 요단 강가에 서서(여호수아 3:1-6)

En Hakkore 2024. 2. 15. 10:38

언약궤는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주 너희 하나님의 언약궤"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언약의 우두머리요, 우리가 회심할 때에 함께 엄숙한 약속과 헌신으로 들어가서 이제 영원토록 오직 그분의 것이 되는 바로 그 분이심을 제시한다.🌱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따라간 것은 우리가 그 언약을 따르며, 우리의 주이시며 법제정자이신 그리스도께 실질적으로 굴복하는 것을 -우리가 그 혼인 관계를 신실히 지키며, 언제나 우리 영혼의 영원한 연인이신 그분을 기쁘게 하고 그 분의 관심사들을 증진시키고자 힘쓰는 것을-모형으로 보여 준다. 우리 스스로 그렇게 처신하는 여부에 따라서 이스라엘이 경험한 일들이 우리 것이 될 것이다.

그들이 여호수아의 명령에 복종함에 따라, 그들이 순종하며 언약궤를 따라감에 따라, 하나님은 그분의 권능의 역사를 그들을 위해 일으키셨고, 그리하여 그들이 현재의 "안식"(히 4:3)에 들어간 것이다.

그가 그들의 원수들을 무찌르셨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실제로 그들의 소유가 되었다. 그런데 필자나 혹은 여러분이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오로지 여기 이스라엘이 행한 것처럼 행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이 사건 이면에 깔려 있는 근본적인 원리들을 설명하고 이로부터 배워야 할 주요 교훈들을 상세히 살펴보았으니, 그 구체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가 적을 것이다.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수 3:4).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부모들과 언약을 맺으실 때에 그 언약의 조건들을 그들에게 알려 주시면서 주셨던 다음의 엄수한 금지 명령과 일치한다.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출 19:12).

이 두 금지 명령을 우리에게 어떻게 영적으로 적용시켜야 하는 지가 다음의 말씀에 제시되어 있다.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모임 가운데에서 매우 무서워할 이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이시니이다"(시 89:7).

혹은 신약의 언어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히 12:28-29).

언약궤가 그렇게 앞서서 행진해야 했던 자연스러운 이유는 그 엄청난 무리들 모두가 그것을 쉽게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언약궤와 백성 사이에 공간이 없었다면, 바로 그 뒤를 따르는 자들이 시야를 가려서, 다른 이들이 그것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 마일 정도 앞서서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지고 가면, 온 무리들이 다 그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모형적이며 영적인 교훈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우리 자신이 본성적으로 죄인이므로 거룩한 하나님께로부터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음을 항상 인식해야 한다는 것.🫰

둘째, 우리는 죄인들로서 우리 죄를 지시는 그리스도-언약궤의 덮개에 있는 속죄소와 이를 말씀해 준다-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 놋뱀(그 백성들을 위하여 저주를 지시는 그리스도의 상징물임)이 온 회중이 볼 수 있도록 장대 끝에 높이 달려 있었던 것처럼, 언약궤도 그렇게 전면에 있었다.

셋째, 성도로서 우리는 꾸준히 그리스도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히 12:2).🫰 이것이 그가 우리를 부르사 살게 하신 믿음의 삶이요, 또한 그 삶을 위한 힘이 오직 그 분께만 있으니 말이다.

넷째,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모범을 보이사 그들로 하여금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하심: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요 10:4). 우리의 임무는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것"이다(계 14:4).🫰

다섯째,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백성보다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월등하심-"[그가]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 1:18).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몸의 지체일 뿐이다. 언제나 이것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그가 비록 그들의 친족으로서 기업을 무를 자이시며 따라서 그들을 "형제"라 부르는 것이 부끄러움이 없으나, 그런데도 그는 그들의 주시요, 그들의 하나님이시니 그렇게 알고 그렇게 경배해야 마땅한 것이다- "이는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요 5:23).

여섯째, 우리는 스스로 거룩하지 못한 친숙함을 배제하고서 우리의 하나님이신 주를 합당한 예절로써 대해야 한다는 것.🫰

일곱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늘을 소유하기 위해 원형의 가나안에 미리 들어가셨다는 것: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 6:20)-우리의 유산의 현재적 소유와 미래의 소유가, 시초의 소유와 완전한 소유가, 모두 여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