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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5] 기름 부음(사무엘상 16-17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5] 기름 부음(사무엘상 16-17장)

En Hakkore 2024. 2. 14. 11:54

기름 부음의 예표적 성격

다윗이라는 인물의 예표적 성격은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연구 노선을 제시해 준다. 그의 이름은 "사랑받는 자"(the Beloved)를 의미한다. 그가 베들레헴 주민이었던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가 태어날 곳을 가리켜 주기 위함이었다.

그의 얼굴이 아름다웠던 것(삼상 16:12)은 "사람들보다 더 아름다우신"(시 45:2) 분과 관해 이야기한다. 그가 목동이었던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과 그리스도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 주고 그분의 구속 사역의 본질을 암시한다. 그가 목동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했던 것은 위대한 목자의 사랑과 충성을 예시한다.

그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비천한 일에 종사했던 것은 구주께서 영광스럽게 높임을 받으시기 전에 당하셨던 치욕을 예시한다. 그가 골리앗을 무찔렀던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의 대적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상징한다. 그가 이스라엘의 예배를 완성하고 새로운 성직제도를 시작한 것은 교회의 머리이자 율법의 수여자이신 그리스도를 예기한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예표의 가장 중요한 특징에 이르는 것은 그의 기름 부음을 통해서다. "그리스도"라는 이름 혹은 칭호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다윗은 그분을 그런 식으로 예시했던 이스라엘의 왕들 중 첫 번째 인물이었다. 사실 사울 역시 기름 부음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적그리스도의 어두운 전조가 되면서 다윗과 엄정한 대조를 이룬다.

보다 이른 시기에 아론은 기름부음을 받아 성직에 올랐다(레 8:12). 그리고 보다 후대에는 선지자 엘리사가 기름 부음을 받았다(왕상 19:16). 그러므로 중재자가 갖고 있는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이라는 삼중적 직무의 성격은 그분이 이 세상에 공식적으로 나타나시기 훨씬 이미 완전하게 예표되었던 셈이다.♡

다윗이 세 번 기름 부음을 받았던 것은 놀랍다. 첫 번째는 베들레헴에서 은밀하게(삼상 16:13), 두 번째는 유다인들로부터(삼하 2:4), 그리고 세 번째는 이스라엘 장로들에게서였다(삼하 5:3). 그리고 그가 예표했던 존엄한 분 역시 그러하셨다. 이것은 우리가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을 인용해 본다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삼상 16:13). 우리 주님과 관련해 말한다면, 첫째, 그분은 성령에 의해 기적적으로 잉태되고 성화되셨으며, 처녀 마리아의 태 안에서 큰 은혜를 입으셨다(눅 1:35).

둘째, 그분은 세례시에 공개적으로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행 10:38) 받으심으로써 자신의 사역을 위한  준비를 하셨다(사 61:1 참고). 셋째, 그분이 승천하실 때 하나님은 그에게 "즐거움의 기름을"(시 45:6-7) 부어주셨다. 다윗의 기름 부음이 보다 특별하게 지적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의 시작

하나님이 사울 이후에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대신해 통치하게 하신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분은 지위상으로 본다면 그의 백성들 중 가장 높았던 이로부터 왕관을 취해 그것을 "유다 족속 중에서도 작은"(미 5:2) 베들레헴에 거주하던 한 인물에게 거부를 당하셨던 이가 세상의 위대한 인물들로부터 나라를 넘겨받게 될 것을 예시하고자 하셨다.

이것은 훗날 보다 분명하게 계시되었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의 꿈에 관한 해몽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여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 것을 왕께서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알게 하신 것이라"(단 2:44-45).

다윗이 예시했던 것은 그리스도의 중재적 통치였다. 그것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시 45:6). 그 "보좌"는 그뷴의 중재적 보좌이고, 그 "규"(scepter, 笏) 그분이 중재하시는 나라의 권위에 대한 상징이다.

여기에서 이런 은유들은 위엄과 주권을 지니고 왕직을 시작하시는 그리스도에게 적용된다. 그분이 앉으신 보좌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다"(히 8:1).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시 45:7).

이것은 그분이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던"(사 53:3) 날들과 비교된다. 이것은 그분의 승리와 고양(高揚)을 의미한다. 그분이 "영화와 존귀로 관을 쓰신"(시 8:5) 것은 그분의 승천 때였다.

그리스도의 제사장직과 그 직무가 멜기세덱과 아론에 의해 예표되었던 것처럼, 중재자의 왕권과 그분의 나라는 다윗과 솔로몬에 의해 예표되었다. 여기에서 이 문제를 확대하는 것은 우리를 너무 멀리 나가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는 이들은 사무엘하 7장 12-16절, 이사야 16장 5절, 예레미야 23장 5-6절과 33장 14-17절, 사도행전 13장 34절, 요한계시록 3장 7절과 5장 5절 등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러분이 그들에게 그런 구절은 오직 미래에 속할 뿐이라고 믿게 하려는 이들의 꾐에 넘어가 그런 구절들의 소중한 가르침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경우에 성경의 많은 구절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그 구절들을 세속적인 것으로 만들고, 그로 인해 그것들의 참되고 영적인 의미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는 기독교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의 그 어떤 부분이라도 빼앗아 가려는 그 어떤 해석체계에 대해서도 조심해야 한다. 모든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 3:16).💕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 1 p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