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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8] 성장의 근거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영적인 성장 8] 성장의 근거

En Hakkore 2024. 3. 31. 21:16

성장의 근거 3

사도들이 오순절 날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각기 다른 방언으로 말을 하니, 어떤 사람들은 조롱했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이는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의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행 2:33)고 단정적으로 선포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기록되었으되 "너희가 거룩하신 자 곧 그리스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으니"라고 하였고, "너희가 기름부음을 받음은 너희 안에 머물게 하려 하심이니라"(요일 2:20,27)고 하였다. 이것은 "성령께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 위하여"(요 14:16) "성령께서 예수께 내려오셔서 머무셨다"(요 1:33)고 했던 것과 같은 의미이다.♡

이것은 중생과 불가분리의 관계이다. 중생한 영혼은 새 생명을 받았을 뿐 아니라 성령께서 그와 교통하시고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살아있는 관계를 나누는 것이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 성령께서는 오셔서 내주하시고 신자의 몸으로 그의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신다.

성령의 기름부으시고 내주하심으로 말미암아, 중생한 영혼은 거룩하게 되고 하나님께로 성별되어 '거룩한 제사장'의 반열에 서게 되는 것이다.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

여기에서 성도는 세상과 엄격히 구별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성령께서는 인치고 확증시키는 역사를 한다. 그것은 요한복음 1:33에서 성령이 그리스도에게 강림하심으로 나타난 역사와 동일하다. "인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인치신 자니라"(요 6:27). 그러므로 신자들도 이와 동일한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다."(엡 1:15)

그러나 중생한 사람은 전적으로 수동적이고 그 순간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에 문제가 제기된다. 한 영혼이 영적으로 거룩하게 살리심을 받았는지 그렇지 않는지를 어떻게 식별할 수 있겠는가? 얼핏 보아서 어떠한 대답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에게 이같은 기적적인 은혜가 역사하는데 조금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것같지 않다. 신령한 생명이 죄와 허물 가운데 죽은 죄인에게 주입된다면, 그 결과는 곧 명백하게 나타날 것임에 틀림없다. 거듭난 생명은 그것이 나타나는 결과. 이를테면 신령한 소원과 신령한 작용으로 말미암아 명백해진다.

갓 출생한 어린 아이가 어머니에게 본능적으로 매어달리듯이, 영적인 아이도 그것을 부여하신 이에게로 향한다. 양심 속에 하나님의 권위가 역사하며, 하나님의 거룩함을 감지하게 되며, 영혼은 그를 갈망한다. 그의 놀라운 은혜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변화받은 심령은 희미하게나마 깨닫기 시작한다. 그는 이전에 변화받지 못했을 당시의 죄성과 하나님의 영광에 상반되는 것을 가장 악독한 것으로 의식하기 시작한다.♡

"자연인(타락한 본성을 갖고 있는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자신의 어떤 노력도, 대학 교육도, 종교적인 가르침도 없이 영적인 지식과 영적인 일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그것과 완전히 다른 분야에 속해 있다.

자아를 사랑함이 그를 무지하게 했으며, 자신을 기쁘게 함이 그를 속되고 감각적인 것들에 얽어매 놓았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 나라를 볼 수 없다. 사람이 천국에 대해 개념적인 지식은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은혜가 그의 영혼 속에 역사하지 않으면 그것에 대한 신령한 지식을 얻지 못한다. 물고기가 마른 땅 위에서, 그리고 새가 물 속에서 생명을 부지한다는 것보다 중생하지 못한 자가 하나님의 신령한 일을 체험하고 누리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다.

영혼 속에 신령한 생명이 주입될 때 나타나는 첫 역사는 지은 죄책과 불결에 대한 유죄의식이 싹튼다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며 자신의 지은 죄의 오염으로 인하여 통렬한 자각을 하게 된다. 양심에 조명이 되면 죄를 가장 악독한 것으로, 하나님의 거룩성에 상반되는 본성으로, 그와 원수 되었던 것으로 깨닫게 된다.

그때부터 죄는 가장 사악하고 임비한 것으로 미움의 대상이 된다. 죄의 추악성이 적나라하게 나타나며, 그것이 지존자를 슬프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의 마음의 죄됨을 알게 되고 자신의 의가 전능자에게 원수되었던 것을 깨달으면, 그의 입은 할 말을 잃어버리고 죄를 조금만 감해달라는 단 한마디의 말도 못한다.

그는 다만 자신이 전능자 앞에서 죄인이라고 고백한다. 그때부터 그가 마음 속에 가장 고심하고 있는 바는,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어떻게 하면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될 수가 있으리이까? 라는 문제이다.

신령한 생명이 영혼에 역사할 때 나타나는 두 번째 결과는 자기가 비참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그러한 자신에게는 그리스도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영광스런 복음이 이제 그에게는 전에 없이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이제 이것이야말로 "먼 나라에서 들려오는 좋은 소식"(잠 25:25) 이지 않겠느냐는 설교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성경을 펼쳐들고 이 복음이야말로 너무나 훌륭하기 때문에 진리일 수밖에 없다는 확신에 도달한다. 그는 주님에 관해서 그리고 그의 성육신과 십자가에 죽으신 사역에 대해 읽고서는 전에 없는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는다. 그가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불경건한 자들을 위하여, 원수들을 위하여 피흘리셨다는 사실을 배우게 될 때에, 그의 가슴 속에 소망이 감돌게 되며 죄책의 공포감에서, 그리고 절망의 심연 가운데서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

그의 마음은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다른 어디에서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확신감에 사로잡힌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용서와 구원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이제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시는 말씀을 힘써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마 28:19; 행 11:26), 즉 그리스도를 배우는 자이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이다. 제자도에 대한 말씀은 누가복음 14:26-33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용어는 중생한 영혼에게 관계된다.

버림받은 처참한 상태에서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위한 구주임을 알게 됨으로, 그는 이제 반역하던 무기들을 던져 버리고, 모든 우상들을 끊어 버리고, 세상과 짝하던 요소들을 떨쳐 버리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주 되심을 고백하고 그의 멍에를 지고 그 안에서 쉼을 얻는다. 그의 속죄하는 피 효능을 믿음으로 모든 죄책은 사라지며, 이제부터 그의 간절한 소망과 노력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과 영광돌리는 일이다.♡♡

이렇게 함으로 중생이 생겨나게 되며 회개를 통해 그것은 더욱 명백하게 나타난다. 진정한 회개를 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며, 그가 남겨 놓으신 모본 또한 따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