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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6] 성장의 근거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영적인 성장 6] 성장의 근거

En Hakkore 2024. 3. 31. 21:14

성장의 근거 1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성숙이 어떤 것인가를 정의하기 이전에, 성숙을 가능케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나타내 보이고자 한다. 왜냐하면 영적인 성숙에는 영적인 생명이 나타남을 기정사실로 보기 때문이다.

오직 중생한 자만이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인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무엇인가를 설명함으로 서두를 시작해야겠다.

많은 이들이 이것을 매우 불필요한 것처럼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사방에서 영적인 모조품들이 엄습해오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매우 중요한 문제에서 속고 있다. 그러한 방법들이 매우 다양함으로 인해서 우리는 꼭 이 방법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미안하지만 성경적인 의미에서 모든 이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당연시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쓰고자 하는 내용 중 어떤 것이 아직도 어둠에 있는 자들에게 빛을 던져 준다면 이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바가 될 것이다. 이 내용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아직도 방황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의 길을 더욱 분명히 보여주는 수단이 될 수도 있으리라. 이것은 또한 믿음에 견고히 서있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유익을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 종류의 '그리스도인'

일반적으로 말해 소위 '그리스도인' 이라고 불리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설교자에 의한 그리스도인, 자아에 의한 그리스도인, 하나님에 의한 그리스도인이다.

'설교자에 의한 그리스도인'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유아세례를 받고 교회의 정회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특수한 직임을 맡지 않았을지라도), 책임 연령에 이르면 전도자에게 '고백할 것'을 강요받는다. 이러한 강요받는 일은 형태와 정도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에서 대중최면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앞으로 나오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양심에 거리낌 없이, 하나님 앞에서 상하고 애통하는 마음도 없이 '당당한 일을 하도록',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모이도록', '하나님의 백성들과 연합하여 악에 대항하여 싸우는 십자가의 군병이 되도록', 권유받는다.

이러한 신자들은 버섯과 같아서 밤 사이에 돋아올라 잠시 동안 지탱하나 뿌리가 없어 견디지 못한다.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소위 '인격적인 사역'이란 미명하에 많은 사람들이 강요받는다. 이는 마치 떠돌이 외판원들이 '세일'하는 방식으로 실적을 올리려는 수작과 유사하다.

'자아에 의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자들인가? 그들은 방금 앞서 말했던 사실들로 경고받은 자들이며, 종교적인 협잡꾼들에게 농락당할까봐 두려워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협잡꾼들이 은밀한 곳에서 하나님과 영교함으로 '만사형통'하다고 농간부리는 데 속지 않으려고 주의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만인을 사랑하신다는 사실과 그리스도께서 전인류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복음을 믿는 것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요한복음 3:16과 로마서 10:13과 같은 말씀을 단지 지적으로 승인하거나 받아들인다.

요한복음 2:23,24의 말씀은 별로 중시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 그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많은 사람이 그를 믿었으나 저희가 바리새인을 인하여 회당에서 쫓겨날까봐 그를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께 칭찬듣는 것보다 사람에게 칭찬듣기를 더 좋아함이니라".

여기에서 그들의 '믿음'이 문제시된다. 자연인도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들은 나름대로 만사형통하게 나아갈 수가 있으며, 기뻐할 수가 있다. 그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흔들 수 없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요 6:44). 여기에 그리스도의 놀라운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대부분의 기독교 신자들이 지적으로 승인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러한 자들은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 전적으로 자기 의지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하는 자들과 다를 바 없다. 타락한 인생의 운명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처분에 달려 있다는 사상은 이러한 교만한 자들에게 정말로 관심이 없다. 그리스도께 나아온다는 자체가 영적인 활동이지 자연적인 활동은 아니다. 중생하지 못한 자는 죄와 허물 가운데 완전히 죽어 있기 때문에 어떤 영적인 활동도 불가능하다.

그리스도에게 나아온다는 것은 주님을 절감하는 영혼의 사역이며, 잃어 버린 바 된 죄인을 영접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게 된 결과이며, 그를 간절히 사모하는 애정의 발로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과 원수'된 자연인이 성자 하나님을 사모할 수 있겠는가?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