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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론 103] 성화론의 도구 본문

성화론 (Sanctification)

[성화론 103] 성화론의 도구

En Hakkore 2024. 3. 30. 12:03

그렇다면 믿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정의를 내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점에 있어서 잘못된 견해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만이 아니라 영혼에 해를 끼치는 것이요 평화를 깨는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말씀에서 하나님을 마치 어린아이가 품듯이 품는 것이요 그가 말씀하신 것 위에 자리를 펴는 것이다. 믿은 자들에게 약속하신 모든 복과 은혜를 수여해 주시는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다. 죄로 인해 더럽혀진 영혼이 어떻게 어린양 피의 깨끗케 하시는 효력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가? 오직 믿음으로 된다.

우리의 영혼과 양심에 효력적인 것이 되게 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피의 깨끗케 하심과 성령의 역사하심은 복음의 약속들안에 드러나게 된다. 그 약속들 안에 제시된 선한 것들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유일한 길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하나님 자신이 영원하신 언약 안에서 이 도구의 효과가 믿음에 미치도록 제정하셨다. 그러므로 진정한 믿음을 실행하는 것만큼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리는 일은 없다. 먼저 제기한 질문으로 돌아가자. 어떤 측면에서 믿음이 우리를 성결케 하는가? 우리의 답은 이것이다.

첫째, 거룩하신 자이신 그리스도에게 우리를 연합시킴으로 거룩케 한다. 그리스도와 하나 됨은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모든 복의 기초이다. 그러나 신자가 실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게 연합되기까지는 정말로 신자에게 부어지는 그 복들은 해당사항이 아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었다(고전 1:30)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받는 것은 믿음에 의해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그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화목제물로 세우셨기 때문이다(롬 3:25).

그의 공로의 피는 우리를 의롭다할 뿐 아니라 거룩케도 하신다. 따라서 믿음 자체에는 본질적인 어떤 혜택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 대신에 그 믿음의 가치는 전적으로 무한한 가치를 소유하고 계신 그리스도를 굳건히 붙드는 손 안에 놓여있는 것이다. 💕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믿음은 모든 자랑을 배제하는 것이다(롬 3:27). 그러므로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를 높이거나 자기만족을 자아내는 것은 복음이 말하는 참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다.

둘째로 믿음이 신자를 성결케 함은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들을 다 즐거워하게 하심으로 말미암는다. 그리고 하늘에서 그 안에서 자신의 것이 될 것들을 인해 즐거워하게 하심으로 된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증거가 참되다고 봉인한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선언하실 때 믿음은 그렇다고 확정한다.

믿음은 소유자에게 확신을 준다. 비록 자신 안에 타락한 본성의 찌꺼기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그러한 죄인은 세상의 모든 여정의 종착역에 이를 남아 있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는 여전히 완벽한 거룩한 자요 그리스도께서 신자의 머리요 보증자로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게 흠하나 없는 자로 세움을 입게 될 것이다.

"이로써...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리라"(요일 4:17). 그러한 믿음은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에 대한 증거이다(히 11:1). 자연인의 눈으로는 자연적인 감각뿐이기에 그 사실을 전혀 인식할 수 없다.

믿음은 이 감각으로부터 전적으로 설계하고 우리의 심령을 하늘에까지 나아가게 한다. 하나의 자연스러운 믿음이나 설교자가 생산한 믿음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작동되고 부여받는 복음적 믿음이 그렇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 실수하 말기를 바란다. 우리가 여기서 취급하고 있는 믿음은 막무가내라는 광신주의(blind fanaticism)가 아니다.

믿음은 내주하는 죄에 대해서 무지한 것이 아니다. 이 믿음은 육체의 끈질긴 활동들에 대해서 애써 눈을 감고 있는 것도 아니다. 육체가 생산해내는 나쁜 열매들을 그 그릇된 것들이요 무지한 것들이요 잘못된 것들이라고 칭함으로 말미암아 그 진가를 누구러뜨리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분명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것들은 무한히 극악한 것임을 파악하고 있다. 믿음은 정직하고 어둠을 빛이라고 말하는 위선을 조롱한다. 그러나 믿음은 본래 모든 것이 전적으로 타락했고 자연 만물의 모든 부분이 다 어리석게도 무지하게 더러운 것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믿음은 주께서 흘리신 그 보배로운 피가 하나님의 모든 요구사항을 다 만족시킨 것임을 알고 있다. 그 피를 믿는 자들을 모든 죄로부터 깨끗케 하심도 알고 있다. 그것은 광신주의자도 아니요 그리스도의 희생제물의 충분성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것에 대한 가치를 직면하여서 그 복을 받고 싶어서 그렇게 추측하는 것도 아니다.♡

Arthur W. Pink 성화론 p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