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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론 (Sanctification)

[성화론 92] 성화론의 규범(3)

En Hakkore 2024. 3. 29. 10:20

앞 장들에서 우리는 성령의 거룩케 하심이 중생과 회심의 때에 우리 속에서 시작하신 것으로서 지속적이고 완전한 역사임을 살펴보았다. 이제 참된 회심은 우리의 부패와 죄성으로부터 건짐을 받아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으로 회복됨이 포함된다는 것 혹은 그의 도덕법에 실제로 순응하는 것이 내포되어 있음을 다루고자 한다.

계명에 순응하는 것(앞 장에서 본 것과 같이)은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궁극적으로 오직 하나님만 위해 살고 그를 가장 기뻐하는 길을 가겠다는 의지가 들어있다. 그리고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들을 사랑하는 만큼 사랑한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은 머리로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 회심은 본질상 우리의 본 모습으로부터 그러한 성향으로 회복되고 실천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

우리들을 이 놀라운 축복의 상태로 돌리시려고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율법을 능력으로 죄인들의 이해력과 심령에 적용하신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시키신다(시 19:7).

율법의 그 효과적인 적용은 죄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며 그 계명에 반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정확히 실감케 한다. 자신이야말로 불쌍하기 짝이 없는 한센 병자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받아야 할 마땅한 형벌은 영벌임을 알게 한다.

자신은 이제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며 전적으로 그 분의 처분에 달려있음을 고백하게 한다(롬 9:18절을 보라). 이런 경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율법이 없이는(율법에 대한 성령의 적용하심이 없이는)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우리가 그 죄의 가증스러운 실체를 전혀 파악할 수 없다는 것임)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자신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만큼 착하다고 여기고 자신의 종교적인 행위들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다는 말임) 계명에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죄의 무시무시한 실체를 보며 내 심령에 있는 재앙으로 깨닫게 되었다는 말임) 나는 죽었도다"(자신의 의가 죽었다, 롬 7:8-9).

율법이 신령한 것이라는 것을 비로소 영혼이 처음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롬 7:14). 그 율법은 단지 경건의 모양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선한 행실을 수반케 하는 거룩한 생각과 열정도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결코 받으시지 않으신다.

그 율법은 심히 넓다(시 119:96).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이 아니라 우리의 내적인 상태까지 다 포함하는 것이다. '사랑하라'는 말은 율법의 요구사항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심령의 일이다. 율법이 사랑을 요구하고 사랑 외에(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요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모든 죄는 율법이 요구하는 것과 정반대로 행하는 것이다.

율법에 일치되지 않는 마음의 모든 활동, 거룩한 사랑에 의하여 유발된 것이 아닌 것은 다 계명에 반하는 짓이요 그렇기 때문에 죄악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명백하게 선언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

하나님은 우리의 반듯한 행동거지보다 그 이상의 것을 원하신다. "중심의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시 51:6). 율법은 마음의 생각과 의향을 살핀다. 탐하지 말라는 계명은 육체의 행동이 아닌 심령의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죄인이 율법의 요구가 얼마나 높고 거룩한 것인지를 실감하게 될 때 자신의 상태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롬 3:20). 깨어 있는 죄인들은 율법의 정죄와 저주함이 얼마나 정당한 것인지를 인정한다. 어려서부터 습관적으로 그 법을 어기고 살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영혼이 영원한 저주의 상태에 처해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그는 버려진 자요 받아야 할 도움이 어떤 것인지 전적으로 절망적인 존재임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 절망감은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도록 준비시킨다. 그러나 자기만족과 자기 의로 둘러싸인 존재 스스로는 그 위대한 의사에게로 나아가지 못한다. 따라서 그 율법은(성령의 손안에서) 복음의 시녀이다.

그것이 심지어 시내 산에서 조차 하나님이 정하신 순서였다. 도덕법이 먼저 주어졌다. 그 다음에 제자장직과 제사제도와 더불어 의식법이 주어졌다. 도덕법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구세주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고 의식법은 다양한 형태의 예표들을 가지고 구세주를 제시하였다.

영적으로 눈이 떠져서 감사할 수밖에 없게 하는 은혜의 넘쳐 남은 죄가 엄청나게 많이 있다는 양심의 가책을 받기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율법의 공의와 위엄 및 탁월함을 우리가 진정으로 파악하게 될 때 죄의 무한한 사악성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안에 죄가 넘쳐나고 있음을 알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깨닫는 것이다.💜

Arthur W. Pink 성화론 p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