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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론 (Sanctification)

[성화론 84] 성화론의 규범(1)

En Hakkore 2024. 3. 29. 10:15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 종의 형체를 가지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었다. 그의 공생애는 율법을 최고로 존중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죄인들이 율법의 요구들을 한쪽으로 밀어놓는 다든지 하나라도 무시함을 보이는 것이 없이 의롭게 되고 거룩케 되어지게 함이었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율법 아래에 나셨다(갈 4:4). 그것은 영광의 주께서 취하신 놀라운 일이었다! 둘재로 그는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시 40:7-8)라고 선언하셨다. 심중에 있다는 것은 그의 열정에 안착되어 있다는 말이다.

셋째로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율법의 모든 명령들을 흠없이 순종하셨다. 한 아이로서 그리스도는 그의 부모에게 복종했다(눅 2:51). 인간으로서 그는 안식일 지켰다(눅 4:16). 그리고 그의 주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섬기셨다(눅 4:8). 넷째로 요한이 그의 세례 받으심을 처음에 반대했을 때 그는 답하기를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고 하셨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율법 수여자가 세우신 예전(禮典)에 복종하심으로서 그에 대한 사랑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물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가 자기 백성들을 향한 사랑의 증거는 그 백성들의 죽음 자리에 자신의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분명한 것은 그 율법을 보완한다는 것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무한한 반감을 표출하심이다. 마치 그것이 적합하지 못하고 오류가 있는 것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반감 때문에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필요했던 것이다.

만일 그 율법이 보완되었다면 죄인들은 아주 손쉽게 구원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보완되지 않았어야만 했다면 그렇다면 그 율법의 요구는 어떤 다른 방식으로라도 충족되어졌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죄인들은 영원히 정죄상태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기꺼이 개입하셨기 때문에 그리고 율법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셨기 때문에(사 42:21)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의 명예를 지켰으며 어떤 타협도 없이 죄인들의 가장 사악한 죄까지도 다 용서받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이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13)

그리스도는 그의 아버지의 영광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의 율법을 철회한다든지 그의 권위에 그의 백성들이 불순종하는 상태에 머물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들도 사랑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자유케 하는 완전한 율법으로부터 표류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그의 공생애를 기록하고 있는 영감된 말씀을 세밀하게 읽어보라. 여러분은 그의 입술에서 단 한마디도 그 율법을 존중치 아니하는 소리가 나왔음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도리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명령하기를 남들이 우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을 우리가 남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셨음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율법이요 선지자이기 때문이다(마 7:12).

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사도들도 율법의 권위를 가지고서 도덕적 의무들을 수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 💕

"자녀들이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엡 6:1-2). 사도 요한은 신자들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라고 권하였는데 그것이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라"(요일 2:7)고 하였다.

우리가 더 살펴볼 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거룩케 하심에 사용하시는 위대한 수단이 바로 그 율법이라는 점이다.

Arthur W. Pink 성화론 p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