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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론 (Sanctification)

[성화론 63] 성화의 조달자(3)

En Hakkore 2024. 3. 27. 10:56

우리가 그리스도를 처음 믿을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것이 되는 완전한 성화가 있다. 물론 우리가 그것을 그리 많이 실감하지 못할지라도 그것은 사실이다. 또한 우리 안에서 이 사실과 완벽하게 일치되는 경험들이 있게 될 것이다. 그것 때문에 실제 선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우리가 영화롭게 될 때 그리고 죄를 알지 못하게 되는 그 복된 나라에 들어가게 될 때 성취될 것이다. 이 두 사에에는 신자들은 지상의 삶을 살아간다. 이 삶에는 고통과 빛과 어둠이 뒤섞여 있는 혼란함, 기쁨과 슬픔, 승리와 실패가 다 섞여 있다.

특히 오래 살수록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경향을 더 많이 보인다. 육체와 영 사이에 끊이지 않는 전쟁이 있다. 각각은 서로의 욕구를 따르게 한다. 그리하여 성도의 노래 속에 탄식이 뒤섞여 있는 것이다. 신자는 유혹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과 유혹에 넘어가서 통탄한 고백을 하는 상한 심령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신자는 종종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라" 라고 고백한다(롬 7:24). 그 같은 삶이 내게도 25년 동안 일어났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

세상의 상거래에서 보는 돌팔이 의사들이 난치병들을 위한 확실한 치유책들이 있다고 선전하고 다닌다. 그들은 그들의 거짓 선전에 귀를 기울이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희생을 대가로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고 있다. 그런 수많은 돌팔이 약장사들이 지금 종교계 안에도 있다.

우리 속에 내주하는 죄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 방책을 가지고 있다고 큰 소리로 떠든다. 앞에서 언급한 그 내용은 사기꾼들이 열렬히 사용하는 것들이다. 그 사기꾼들은 거룩한 공포의 손과 눈길로 그러한 '불필요한 비극'을 향한 그들의 동정심을 큰 소리로 표현할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패배의 경험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가련한 인생들이 한 번도 성결케 되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단정지어 말한다, 그런 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제단에 내려놓아야 하며, 승리하고자 한다면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승리적인 삶을 들어가라고 말하거나 '둘째 축복을 받는 것' 또는 혹자들이 말하는 '성령의 세례를 받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자신들의 의를 산출하도록 죄인들을 곁에서 도우시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이 그리스도라고 소개하는 복음의 왜곡자들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결핍을 지원해주는 단순한 첨가물로서 그리스도를 말한다. 또 그들은 사람들의 실패 위에 그리스도의 자비의 덮개를 쓰워줄 뿐이다.

우리가 앞에서 지적한 종교적인 몇몇 사기꾼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졸렬한 모조품을 큰 소리로 외치면서 우리는 오로지 그의 피로만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한 성화 혹은 예수의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얻어지는 완전한 구원 문제에 이르게 되면 그들의 속임수 앞에다 그 어떤 좋은 것도 제시할 수 없는 자들이다.

그들이 말하는 그리스도는 우리 자신들의 힘으로 획득하려고 헛된 노력을 지원해주는 분에 불과하다. 그를 온전히 신뢰하면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알아차리기 전에 손쉬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에서 죄가 없는 완전함을 기대할 만한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한 가르침은 치명적인 속임을 당하게 할 뿐이거나 혹은 비통한 실망감을 안겨다 줄 뿐이다.

앞에서 언급한 자들은 일반적으로 칭의와 성화 그 둘을 실제로 또 시간적으로 분리시키는 자들이다. 그렇다. 그들은 사람이 칭의를 통해서 살아가지만 아직 성화가 부족한 자라는 견해를 붙들고 있다. 그리고 영혼의 두 가지 독특한 행동들에 의하여 거룩을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 묘사한다.

그 둘을 시간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들은 죄인들에게 의롭다함을 받으라고 촉구하듯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제는 거룩해지라고 권면한다. 이 거룩을 이미 획득한 사람들을 그들은 삼차원에 들어간 사람들이라고 묘사한다. 즉 지금 보다 높은 차원의 세계로 진입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경험을 '둘째 축복'이라고 말한다. 첫 번째 축복은 죄 사함인데 그리스도의 이름의 효력을 신뢰함으로 말미암아 죄의 권세(혹자는 현존이라는 말을 덧붙여 사용한다)로부터 자유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죽으신 구세주께서 지옥으로부터 건져주시고 영원히 사시는 구세주께서 이제 사단으로부터 구원해 주신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질문이 있다. 신자는 자신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바칠 필요가 없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룩을 획득하기 위한 목적으로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렇다고 죄성을 지닌 옛 시람, 육체의 진전 혹은 청결함을 위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로마서 12:1절('그러므로' 라는 접속사는 하나님의 자비가 5:1,2, 6:5,6, 8:30 등을 염두해 둔 말임을 분명히 보여준다)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것인 그 힘으로 살아가도록 촉구하는 요청이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바치는 것은 우리가 성결케 되었거나 그에게 이미 봉헌된 존재였음을 실제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의 몸을 거룩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거룩한 자가 되었음을 확신하는 가운데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Arthur W. Pink 성화론 p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