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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론 25] 성화론의 문제해결(1) 본문

성화론 (Sanctification)

[성화론 25] 성화론의 문제해결(1)

En Hakkore 2024. 3. 25. 11:23

앞에서 지적한 것들은 중생하지 못한 타락한 자들의 최상의 행위들이 하나님의 요구에 결코 부합된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자연인의 행위들은 하늘의 인준을 결코 받아낼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행위의 시작도 끝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들 행위의 원천이거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그 행위들의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 모든 것들은 부패한 심성으로부터 나온 것들이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과시에서 비롯된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물은 수면 위로도 올라 올 수 없으며 또는 산위로 흘러갈 수 없다.

깨끗한 냇물은 불결한 샘에서부터 흘러나올 수 없는 것이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일 뿐"이다(요 3:6). 교육을 받고 정제되고 종교화된 육을 지닐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행위들이 깨끗한 것이 되려면 반드시 성결케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인간이 무한히 깨끗하게 하나님 앞에 서기 적합한 존재가 될 만한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본질적으로 인간은 거룩함이 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부패하였고 더럽고 불결한 존재이다. 인간은 세상을 창조하는 것보다 스스로 거룩한 존재로 만들 능력이 없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들을 제어하는 것보다 호랑이를 정글에서 데려다가 훈련시키는 것이 더 쉽다. 우리의 영혼에서 교만을 제거하는 것보다 차라리 바닷물을 텅 비게 만드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서 죄악의 잔재를 제거하는 것보다 바닷물에서 소금기를 제거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렘 2:2)♡

'우리가 본질적으로 최상의 상태에 있었을 때, 우리의 본래의 거룩한 상태에 있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아담 안에 있었을 때 왜 그 거룩을 지켜내지 못하였는가? 그렇다면 지금 그보다 훨씬 못한 부패하고 타락한 상태에 있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우리 자신을 회복시킬 수 있으며 우리의 영혼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재 형성케 할 수 있겠는가?

그 일을 하려면 하나님이 처음에 창조하였을 때보다 훨씬 능가하는 뭔가가 우리에게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만일 우리의 권능 안에 있고 우리의 영혼의 본질적인 우리의 본성이 수선되기 위한 무한한 지혜와 은혜의 발명이 절실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부패한 심성이 그 자체를 깨끗케 할 수 있다거나 혹은 타락한 심성이 그 자체를 교정할 수 있다거나 혹은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주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우리가 우리 안에서 우리 자신의 수고로 말미암아 그것을 다시 창조할 수 있다는 것보다 더 이상의 상상을 할 수 없는 존재이다'(존 오웬).

그러나 하나님의 요구에 부응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은 순진한 나약함이 아니라 우리의 악함을 더 악화시키고 우리의 죄책을 더하게 하는 무거운 유죄의 일임을 지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여 주신 개인적인 경건함의 그 표준에 도달할 수 없는 우리의 무기력함은 수행 능력의 부족함이나 또는 필요한 기능들의 결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고자 하는 마음의 결핍과 참된 거룩을 실행하고자 하는 자발적인 마음이 없는 것에 놓여 있다.

만일 연인의 상태에 있는 인간이 사랑스러운 마음을 소유하고 있거나 참된 거룩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또한 그것을 행하고자 하는 열정과 성실한 수고를 지니고 있는데 그 일에 실패한 것이라면 많은 이들이 하는 것처럼 그들의 실패에 대한 핑계를 대기 급급해 할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변명만 늘어 놓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인간의 무기력함은 자신의 완고함에 놓여 있다. 주 예수께서는 "너희는 내게 나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요 5:40).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자는 자기 재산을 헛되이 탕진한 채무자에 변명하지 않는다. 술주정뱅이 역시 술 취해서 저지른 미친 짓이나 악행에 대한 변명을 양해하기보다는 도리어 그의 잘못을 더 가중시키는 것이다. 비록 인간이 자신의 악행을 통해서 순종할 능력을 잃었다할지라도 하나님은 명령할 권리를 상실하신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육은 성령을 거스리기 때문이다(갈 5:17).

그것은 하나님께 복종하는 자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전혀 정상 참작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으로 나오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어둠을 사랑하는 본성 때문에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요 3:19-20).

그렇다. 구세주께서 명백하게 그리고 엄히 명령하신 것처럼 그것은 그들의 죄질을 더 세게 할 뿐이다. "정죄는 이것이니!" 그렇다면 죄를 물마시듯 마시는 인간이 얼마나 역겹고 더러운 존재이지 않겠는가!(욥 15:16). 죄인은 그럴 마음이 없기 때문에 거룩을 실행할 수 없는 것이다.

Arthur W. Pink 성화론 p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