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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론 (Sanctification)

[성화론 23] 성화론의 문제점

En Hakkore 2024. 3. 25. 11:22

일반적으로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죄로부터 의롭게 변화되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전에 먼저 자신들의 상태가 변화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인식함이 없이 자신들의 삶을 개혁해보겠다고 나서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마치 태엽이 고장 난 시계인데도 그 시계 유리 표면을 깨끗이 닦고 뒷면을 광낸다고 해서 시계가 작동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 있는 자는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것이 니고데모가 저지른 큰 실수였다.

그는 자신이 필요한 가르침이란 이렇게 겉만 번지르르한 것이었다. 그것이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공의로운 걸음을 걷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에게 이렇게 선언하셨다: "내가 네게 거듭나야하겠다는 것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 3:7).

그 길은 니고데모가 영적인 본성을 소유하기 전에 영적인 일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영적인 성품은 중생하기 전에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악한 기질들을 복속시키고자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내적인 생각들과 감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부합한 것이 되도록 오랫동안 힘을 다해 씨름하고 있다. 그들은 모든 죄악들을 끊으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주어진 의무들을 매일 성실하게 수행하고자 한다.

건강을 개의치 아니할 정도로 헌신적이고 의지가 강하다. 자신들의 육적인 정욕을 죽일 수만 있다면 금식과 자신의 몸을 금욕적인 상태로 몰아가는 일들에 매우 열정적이다. 그들은 거룩이란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확신하는 자들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상을 등지고 수도원이나 수녀회에 거하며 지낸다. 그러나 성화의 신비성에 대해 잘 몰라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새로운 신분이 먼저 주어져야만 새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롬 8:8)는 것은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주어진 선언이다. '육에 속하다'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육에 속하다는 말이 타락하고 부패한 본성, 하나님의 생명과 떨어져 있는 본성 안에 거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단지 기본적인 욕구본능에 과도하게 빠져드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는지 모른다.

육에 속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에 배격하는 개인적인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죄성과 죄악들에 대한 저주를 말하는 것이다. '육'은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부패된 인간의 본성을 의미한다. 자연적인 생산을 통해서 아담으로부터 우리에게 이어진 타락한 본성이다.

또한 육에 속한다는 것은 악마의 권세에 완벽하게 복종한다는 것을 뜻한다. 자신들의 힘과 무기로 악마와 대적하고자 애쓰는 모든 자들을 다 정복하는 악마에게 종속됨을 뜻한다. 육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수고로는 마치 피부 마찰이나 주무름을 통해서 죽은 시체를 다시 살려낼 수 있는 것보다 거룩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칭의론에 나타난 다양한 문제점들은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에게 완벽한 순종을 요구하심에 비해 우리는 그 요구에 전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죄와 율법의 저주아래에 놓여 있는 것이다.

심판자께서는 공의에 변동성이란 하나도 없는 분이시다. 죄악을 깨끗한 자로 봐주는 일은 결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이 공의를 무시함이 없이 자비를 볼 수 있게 되는가?

성화의 요소에 나타나는 문제점들은 이것이었다. 율법은 내적인 것만이 아니라 외적으로도 그 율법의 요구에 부합하는 삶을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 본질적으로 완전히 부패한 심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하여 율법에 온전히 순종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롬 8:7)

하나님 자신은 말로 다할 수 없이 순결하신 분이시다. 그런데 도덕적으로 불결한 나환자와 같은 우리가 어떻게 그처럼 완벽한 하나님의 현존앞에 설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전적으로 거룩함이 없는 존재이다. 에디오피아 사람들이 자신들의 피부색을 바꿀 수 있는 것보다 거룩하게 만들 수 없는 존재이다.

중생에 의해서 거룩한 속성이 전가되었다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육체를 지닌 인간이 어떻게 하늘의 지성소에 나아가는 참 예배자로 근접할 수 있는가? 내 양심은 내가 죄로 가득한 인생임을 증거하고 있는데 어떻게 나를 거룩한 백성으로 간주할 수 있는가?

부패의 격한 파도가 내 속에서 요동치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순결한 심령을 소유한 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내 삶에서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께 받으실만한 것이 되기 전에 먼저 내 상태가 변화해야만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내 자신을 부숴버릴 수가 없다.

만일 내가 오염되었고 악한 존재라는 것을 안다면 그리고 삼중으로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기 합당한 존재가 못됨을 안다면 그분이 어떻게 내 자신을 그 분 앞에 설만한 자로 여기실 수 있다는 말인가?

Arthur W. Pink 성화론 p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