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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론 (Sanctification)

[성화론 20] 성화론의 문제점

En Hakkore 2024. 3. 25. 11:20

우리가 성화론의 문제를 거론할 때 하나님의 교훈하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희박한 개념들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이라는 것을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성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 단어를 들을 때에 즉각적인 반발을 가지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만일 그것이 만족스러운 설명이 되지 못한다면)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잘 설명을 요하는 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성화나 혹은 어떤 것이든 그에 나타나는 문제들을 여호와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신성모독을 하는 짓이다. 전지하심은 결코 어떤 난제에 봉착하시는 법이 없다.

난제란 하나님께 있어서 하나의 긴급 상황보다 못한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의 한정된 이해력은 죄로 인하여 뒤죽박죽되었기에 거룩의 문제점은 아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다. 칭의의 주제가 직면하는 어려움보다 더 당혹스러운 것이라고 덧붙일 수 있다.

성화에는 다양한 부차적인 어려움들이 있다. 서론의 네 번째와 다섯번째 단락에서 이미 살펴보아서 느낀 것처럼 여러 어려움이 존재한다. 그것은 성화가 질적인 부분인지 지위문제인지, 법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경험적인 문제인지, 절대적인지 아니면 점진적인지, 그 모든 문제들은 다 이 주제를 다루면서 만족스럽게 해결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보다 복잡한 문제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도덕적으로 나환자인 성도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어떻게 적합한 자가 될 것인지에 대한 문제들이다. 이 문제를 말한다는 것은 이상하게도 가장 영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는 자들에게도 가장 민감한 문제이다.

자기 의를 내세우는 바리새인들과 스스로 만족하는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에게 그 문제는 지혜로운 일이 아니다. 율법 폐기론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거룩함이 우리에게 전가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그 난제를 푸는 대신 도리어 싹둑 잘라버리고 아예 그 사실을 전적으로 부정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거룩함을 요구하고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며 자신의 불결함을 깊이 인식하는 자들은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한다. 일반적으로 낮은 차원에서 독자들 중에는 성화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직 어떤 언급도 없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곳에서 이 교리를 가르치되 적실성이 없거나 무기력한 주제로 치부한다든지 또는 실천하다고 하는 곳에서도 거의 형식에 치우쳐 결함이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거룩함이 없이는 결코 주님을 볼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양심적으로 거룩함을 추구하는 자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하나님의 요구하심들은 이제 조금씩 삭감되고 있고 성경에 제시되어 있는 숭고한 기준들은 무시당하며 심령의 청결함(Heart purity, 참된 경건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임)은 거의 강조하지 않고 있다.

즉 개인적인 상태에 관련되어 심령의 청결함은 거의 다뤄지지 않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없는 곳에서 선한 행실의 무용성에 대해서 경고하는 열성적인 설교자들이 더러 있다면 개인적인 거룩함과 순종함이 수반되지 않는 공허한 믿음을 칭찬하는 자들은 더 많이 발견된다.

그러한 저급한 수준의 영적 삶의 기준이 도처에 팽배해 있다. 상대적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안에서 제시하고 있는 거룩의 모델과 비교할 때 자신들의 거룩한 삶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를 인식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극히 적은 것이다.

성도들이 삶에 대한 그러한 나약하고 불완전한 개념들이 널려있어서 심지어 세상조차도 정죄하는 엄청난 악행들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두고 사는 성도들도 시온에서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함이 일반적이다. 즉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영혼들에게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 자신의 심령의 전염병을 잘 인식하고 있는 고백적인 성도들 대다수도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개념이 매우 희박하다. 그들에게도 성화의 문제점에 관하여 말할 때 잘 알지 못하는 언어들로 말하는 것이 대부분인 것이다. 무시무시한 독기가 기독교의 10분지 9에 다 퍼져있다.

감각이 무뎌지고 영적인 개념에도 둔감하며 보다 깊은 거룩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이 마비되어버린 모습들은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받아주실 만한 것들로 간주되기까지 고착되어 있다.

Arthur W. Pink 성화론 p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