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성화론 10] 성화론의 의미 본문

성화론 (Sanctification)

[성화론 10] 성화론의 의미

En Hakkore 2024. 3. 24. 13:05

'거룩하다' 혹은 '성결케 하다' 는 단어는 수많은 구절에서 '도덕적 자질'(morak quality)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 다음에 등장하는 구절들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렘 7:12). 여기에 설명되는 것들은 각자 도덕적 자질들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감독자가 될 만한 표지들을 보면 그는 반드시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딛 1:8)라고 말하고 있다.

그 모든 것들 역시 다 도덕적 자질들을 말하는 것이다. '거룩하다'라는 용어와 연관된 점은 그 자체가 외적으로 구분되었다는 것보다 훨씬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롬 6:19). 여기에 '거룩하다'는 단어는 부정하다는 단어와 상반되게 사용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고린도전서 7:14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한다: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며 너희 자녀도 깨끗치 못하니라!" 여기서 거룩하게 되다는 말로 번역된 것은 실제적으로 순결한 자가 되었음을 내포하고 있다.

성화는 정결케 됨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여러 정황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모형들로서 보여졌다: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출 19:10). 후자는 전자의 표상이다.

우리가 로마서 6:19절과 고린도전서 7:14절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성화란 부정함과 정반대의 길이다. 그리하여 디모데후서 2:21절에서 여호와의 종은 불명예의 도구로부터(세속적이요 육체적이요 배교도 설교자들과 교회들이) 주인의 쓰심에 맞는 자가 되는 것이 자신을 깨끗하게 일소하는 것이다.

만일 그가 성결케 되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되려면 반드시 그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에베소서 5:26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셨다는 기록을 읽는다. 그 일을 통해서 주님의 교회가 성결케 되고 주님의 사람들과 함께 만나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그의 영광스러운 교회에 나타내시고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이것은 책망할 것과 정반대가 되는 거룩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엡 5:27).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히 9:13). 뭐가 더 명백하게 되겠는가! 율법 하에 놓여 있는 의식적인 성결함은 정결케 함 또는 깨끗케 하는 과정을 통해 획득하는 것이다.

정결케 함은 내적인 성화에 대한 첫 번째 적절한 개념이다. 절대적으로 부정한 자가 되는 것과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상반된 개념이다. 죄로부터 씻음을 받지 못하는 것은 거룩하지 못한 사람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깨끗함을 받은 자는 거룩한 자임을 나타낸다.♡

이 정결케 하는 일은 성화의 모든 원인이요 수단으로 묘사된다. 성화가 그 안에서 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 우선적이고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요구된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겔 36:25).

우리에게 정결한 물을 뿌리는 것은 내가 앞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그 의도하신 목적을 위하여 우리와 교통하시고자 하시는 성령의 작업이다. 그것은 또한 '그 분이 물로 혹은 그와 비교되는 분으로 선언된 적이 있다. 다음 구절이 그 의향을 지니신 분이 하나님의 영이심을 표현하고 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속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26절). 따라서 그의 성령이 약속된 현장에 처음 나타나는 것이요 죄의 오염으로부터 우리를 깨끗케 하는 일이요 자연 질서 안에서 하나님의 계명의 합당하게 걷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신 것이다'(존 오웬).♡

그렇다면 성결케 된다는 것은 앞에 열거된 사례들 가운데서 하나님께 임명되고, 봉헌되거나 또는 거룩과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구별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분리의 행동은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되는 작업으로 말미암아(의식적으로 혹은 경험적으로) 선행되거나 수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은 성결케 하는 작업에 있어서(레위기 8장) 물로 씻음으로 정결케 하고(중생의 씻음을 예표하는 것임, 딛 3:5). 피를 사람에게 뿌리는 것으로서(칭의의 예표, 롬 5:9), 기름을 붓는 것(성령을 받는 것을 예표, 요일 2:20, 27)에 적용되는 것이다.

그 용어를 그리스도인에게 적용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세 가지를 나타낸다. 혹은 전체를 삼등분할 수 있는 것이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 따로 구분하여 드리려는 과정(Process, 히 13:12, 살후 2:13), 둘째는 그들에게 주어지는 거룩한 분리의 지위나 상태를 말한다(고전 1:2, 엡 4:24), 셋째로 성결케 하는 것과 또는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그 신분으로부터 진전되는 것이다(눅 1:75, 벧전 1:15).

다시 구약의 모형으로 되돌아가보자. 특히 신약의 교리적인 진술들을 최고로 잘 해석하는 것들을 살펴보자. 대칭은 언제나 그것이 예표하고 있는 것보다 높은 지위에 있거나 우월한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임을 조심스럽게 간직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본체는 그림자보다 탁월한 것이어야 한다. 외형적으로 그리고 예언적으로 나타내는 것보다 내적으로나 영적으로 훨씬 능가하는 것이어야 한다.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출 13:2). 이것은 앞장에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말미암아 장자들이 다 건짐을 받은 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주어진 말씀이다.

우선 칭의 그리고 성화가 이어지는데 이것은 전체의 보충적인 부분인 것이다. "너희는 짐승의 정하고 부정함과 새의 정하고 부정함을 구별하고 내가 너희를 위하는 부정한 것으로 구별한 짐승이나 새나 땅에 기는 곤충으로 인하여 너희 몸을 더럽히지 말라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사물과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레위기 20:25, 26절).

여기에서 우리는 모든 부정한 것으로부터 분리한다는 개념이 있음을 본다. 거기엔 예외 없이 모두가 다 여호와께 온전히 헌신하는 것을 담고 있는 분리인 것이다.

Arthur W. Pink 성화론 p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