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성화론 8] 성화론의 의미 본문

성화론 (Sanctification)

[성화론 8] 성화론의 의미

En Hakkore 2024. 3. 24. 13:04

거룩(holiness)과 성화(sanctification)는 영어 성경에서 히브리어와 헬라어에서 사용하고 있는 같은 단어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그러나 그 둘이 천편일률적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그 둘은 다양한 형태와 범위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신학자들이 그 의미들을 가지고 여러 다른 정의를 내리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을 조금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그것들은 마지막 것을 제외하고 그 안에는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요소들이 있다. '성화는 경건함, 혹은 그의 형상을 따라 새롭게 된 것이다.' '거룩은 마음과 삶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순응하는 것이다. 성화는 죄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의의 자유함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성화는 성령의 역사로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합당한 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거룩은 죄의 오염으로부터 깨끗케 씻어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우리 본성의 도덕적 혁신으로서 그로 인해 우리가 그리스도를 더욱 닮게 되는 것이다.' '성화는 우리의 육적 본성을 박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죄없는 완전함이 이 세상에서 획득되는 것이다.'

또 어떤 영역에서 높은 명성을 지닌 다른 학파의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주장들은 폭넓게 애용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성결케 하다'는 단어의 정의를 거짓된 것 혹은 적어도 적절하지 못한 것이 되게 만들었다. 그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는 일정한 유형의 본문들에 한정시켜 정의를 내리고자 하여 그런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오직 한 가지 형태의 사용법에 한정시켜 연역하는 방법을 사용함으로 그런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예를 들면, '거룩' 이라는 단어가 무생물 대상에 적용된 사례들 - 이를테면 장막의 기구들-을 다루고 있는 구약의 구절들을 몇 개만 인용하면서 논쟁하기를 그 용어 자체는 도덕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된 논리이다.

그것은 도리어 우리가 성경의 표현들인 '영원한 언덕들과'(창 49:26)과 '영원한 산'(합 3:6)을 읽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원한 분일 수 없다는 논리를(?) 수많은 대학의 신학자들이 사용함으로서 악한 자들에게 내리는 영원한 형벌에 대한 진리를 한쪽으로 치우쳐버리는 것과 같은 논리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용어들은 보다 고상하고 추상적인 측면에서 인용하기 전에 먼저 물리적 대상들에 관하여 사용되는 것이어야만 한다. 우리의 모든 개념들은 물리적인 측면의 매개체를 통해서 허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선적으로 외형적인 대상에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물질적인 것들에 주어진 이름들을 비물질적인 것에 적용하는 지적 논리 전개가 되어야 한다.

인류 역사의 초기 단계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이러한 원리에 따라 다루셨다. 하나님께서 안식을 거룩케 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때 그 단어의 첫 번째 의미는 '구별하다'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부터 그 용어를 도덕적 존재에게 적용하려 할 때 결코 도덕적인 힘을 지닌 단어가 아니었다고 논리를 펴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질문의 시작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세례'(혹 침례)에 대한 주요 구절들이 물에 잠기는 것을 언급하고자 해서 거기에는 신비적이거나 영적인 힘과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하는 논리를 편다면 그것은 누가복음 12:50, 고린도 전서 12:13절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Arthur  W. Pink 성화론 p26

●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누가복음 12:50)

●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린도전서 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