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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128] 에서를 만나는 야곱(창세기 33장)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128] 에서를 만나는 야곱(창세기 33장)

En Hakkore 2024. 3. 21. 11:18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가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헤롸 요셉은 뒤에 두고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창 33:1-3).

여기에서 우리는 야곱의 믿음에 또 다시 반전이 일어나는 것을 발견한다. 사실이 허구보다 더 이상한 법이다. 그것은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야고보는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마치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다고 말한다(약 1:24).

세상에 있는 모든 책들 가운데 성경만큼 사람의 마음속에 가장 깊숙이 숨어 있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책은 아무것도 없다. 성령은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생애를 묘사할 때 사람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그린다.

야곱이라는 한 인물의 생애를 기록함에 있어 경험에 이어 온전한 삶이 따르는 것으로 묘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는 실제로 일어난 그대로 기록하셨다. 그는 우리에게 야곱이 또 다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올무에 떨어졌음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이것은 여기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에 걸쳐 마찬가지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 그러나 가나안에 도착한 후 기근이 일어났을 때, 그는 애굽에서 피난처를 찾고자 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비할 데 없는 용기를 나타냈다. 혼자서 400명의 바알의 선지자들과 맞선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우리는 그가 이세벨을 두려워하여 그녀로부터 도망치는 것을 보게 된다.

또 다윗을 생각해 보라. 그는 당당하게 골리앗과 맞섰지만, 나중에 사울로부터 도망 다녔다. 이와 같이 우리는 성경의 가장 위대한 영웅들에게서조차 믿음에 있어 일관적(一貫的)이지 못한 모습을 보게 된다. 그것은 여기의 야곱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신적 방문자를 붙잡았던 그는 이제 에서 앞에 굽실거린다.

여기에서 우리가 꼭 마음에 새겨야만 하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같은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과 실제로 그의 능력 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전혀 별개라는 사실이다.♡

여기의 야곱의 경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었던 제자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표하여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라고 말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일어난 사건을 주목해 보라.

다음 날 한 아버지가 제자들에게 귀신 들린 아들을 데려왔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고쳐 줄 수 없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실패의 원인을 물었을 때, 주님은 그들에게"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마 17:20). 두 장면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라.

그것은 우리에게 특별한 영적 경험과 실제로 그의 능력 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전혀 별개하는 사실을 가르쳐 주지 않는가?

그것은 여기의 야곱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브니엘에서의 하나님의 특별한 나타나심 직후에 그는 또 다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태로 떨어져 버렸다. 도대체 누가 감히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노라" 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오직 한 분만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요 8:29).

야곱이 어디에서 실패했는지 주목해 보자. 그는 믿음으로 자신의 새 이름의 축복을 사용하는데 실패했다. 밤새도록 씨름한 것으로부터 그가 배워야만 했던 교훈은 그 자신의 모든 노력이 결국 무익하며 쓸모없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육체를 신뢰하는 대신 하나님을 붙잡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가 받은 새 이름 즉 "하나님이 명령하신다"를 의미하는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 안에서,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명령하며 움직이는 자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했다. 💕

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도" "아들" "상속자" 등의 새 이름의 축복 안에서 살며 그것을 누리는데 얼마나 느린가! 아, 우리는 매일의 삶 가운데 그러한 이름들이 가져다주는 위로와 감화와 강함과 고귀함을 얼마나 적게 경험하는가!

여기의 야곱을 보라. 에서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야곱은 또 다시 자신의 옛 계략과 잔꾀를 의지하는 자리로 떨어지고 말았다.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한 야곱은 날이 새자 얍복 나루를 건너 다시 가족들과 합류했다. 그리고 눈을 들었을 때, 그는 에서가 400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는 것을 보았다. 도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로 이러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취했다. 에서를 만나기까지는 아직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그는 각각의 자식들을 각각의 어머니들에게 맡기고, 더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 뒤에 배치했다.

이것은 그가 에서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비록 외적으로는 그를 신뢰로써 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더라도 말이다. 마침내 야곱은 앞으로 나아가 형을 만난다.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3절).

이것은 야곱이 형에게 완전한 복종의 위치를 기꺼이 취할 준비가 되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행동은 그의 참된 마음 상태를 그대로 나타낸다. 그는 형에게 자신이 우월성을 주장할 생각이 추호도 없으며, 기꺼이 종의 위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나타내고자 애썼다.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한 말을 주목해 보라. 그러면 그러한 사실이 한층 더 명백해질 것이다.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33:4).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여기에서 핵심을 놓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과 신실하심 대신 오로지 에서의 너그러움만을 본다. 에서 스스로에게만 맡겨졌다면, 틀림없이 그는 자신을 속이고 도망쳤던 동생을 여기 에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맞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스스로에게만 맡겨지지 않았다. 야곱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특별히 그의 약속에 의지하여 탄원했다. 그리하여 사람의 마음을 임의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에서의 적개심에 불타는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시고 그가 야곱을 따뜻하게 맞이하도록 만드셨다(잠 21:1). 💕

그가 달려와 야곱을 안고, 목을 어긋맞추고, 입을 맞춘 것을 주목하라.

야곱의 아내들과 자식들이 모두 에서에게 "절한" 사실에 또 다시 하나님의 손이 나타나지 않는가?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6, 7절)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313

■ 잠언 21장 1절.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