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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102] 두 가지 기념물(여호수아 4:1-24)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102] 두 가지 기념물(여호수아 4:1-24)

En Hakkore 2024. 3. 21. 11:11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수 5:1).

가나안 족속은 간담이 서늘하여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친구요 보호자가 되시는 백성을 성공적으로 방어하기에는 그들 자신이 전적으로 무기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요단강을 이적적으로 건넌 일을 기념하기 위해 길갈에 세운 기념물로부터 몇 가지 교훈을 받아야 한다.

첫째,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은 우리의 기억에 보배로이 간직할 가치가 있으며, 또한 그는 과연 그러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도록 힘쓸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여호수아는 지극히 엄정한 일을 수행하는 동안에도 여호와의 존귀를 드높이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새겨야 한다.

무수한 사람이 모든 짐(천막 등)과 가축을 데리고 요단 강을 건너는 일을 감독하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그에게 각 지파에게 한 사람씩을 취하여 길갈에 가져가 세울 열두 돌을 취할 것을 명하셨다(수 4:2-3). 그는 머뭇거리지도 않았고, 좀 더 편리한 때에 하도록 허용해 주시기를 구하지도 않았다.

둘째, 하나님이 이 기념물에 대해 명령하신 사실은 하나님이 과거에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우리 마음이 잊어버리기가 얼마나 쉬운지를 생각나게 해주는 엄숙한 도구이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과 그들에게 보이신 그의 기이한 일을 잊었으며", 그들이 "그가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렸다"(시 78:11; 106:13)고 말씀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조차 이렇게 물으셨다.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은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마 16:9).

셋째, 우리가 잊기를 잘 하므로, 이를 방지하도록 적절한 수단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신 8:2)는 말씀을 명심해야 하고, 또한 그 명령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그것을 진지한 기도로 바꾸어야 한다.

하나님이 신실하심으로 우리를 부드럽게 보살피신 과거의 경험들을 자주 떠 올려야 한다. 그렇게 하면 감사의 마음이 강화되어 하나님을 새롭게 찬송하게 되며, 또한 그분을 향한 우리의 신뢰가 깊어져 갖가지 위급한 처지에서도 그가 계심을 주지하고 그가 베푸실 구원을 신뢰로 기대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죽음의 경험을 덜 두려워하게 된다. 아멘!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도록 부르심을 받을 때에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안전하게 건너게 하신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그가 우리를 위해 일하실 것임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고후 1:10).

넷째, 하나님이 과거에 베푸신 구원의 역사만이 아니라 지나간 시대에 그분의 백성에게 긍휼을 베푸신 일들을 우리의 뇌리에 새겨야 한다.💚

여호와의 팔이 "옛날 옛 시대에" 하신 일들을 믿음으로 뒤돌아보고서,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사 51:9-11)라고 노래해야 한다.

주게서 경건한 자를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신다"(벧후 2:5-9)는 것을 확신시켜 주고자 하심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노아를 홍수에서 구원하신 일과 롯을 소돔에서 구원하신 일을 어째서 기록해 놓으셨겠는가?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롬 15:4)일 뿐 아니라, 과거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그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실 수 있고 하실 것인지를 가르치기 위함이다.👏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들을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시 119:52).

다섯째, 길갈에 세워진 기념물은 자라나는 세대를 생각해야 하고 그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 돌탑을 세운 것은 분명 훗날 그것을 바라보는 그분의 권능과 자비의 이적들이 후대 후대에까지 보존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위해 행하신 일들에 대한 영구한 증인이 있어야 했다.

그들 자신은 무능하고 허약했으나, 그런데도 그들은 넉넉히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다. 그 기념물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자신의 강한 능력을 계속 보여 주시며 그 땅을 차지하고 있는 무리들을 무찌르게 하시리라는 확실한 보증이었다.

여섯째, 여호수아가 지시를 받아 세운 그 두 기념물들의 본질과 성격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사람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지를 보게 된다.🫰

쓸데없이 값비싼 것들로 화려하게 치장해놓은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평범한 돌탑으로 그 사건을 기념한 것이었다. 장엄한 건축물의 모든 특색을 갖춘 거대한 주상이나 아치는 승리를 축하하는 기념물로서 절대로 적절치 못했고, 오히려 요단 강 물길에서 가져온 열두 개의 투박한 돌이 여호와의 언약궤의 인도 아래 이스라엘이 이적적으로 강을 건너 가나안에 이른 일을 기념하기에 합당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를 위해 지정하신 그 두 가지 표증과 기념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제사장들과 사제들의 온갖 장식들을 빼버렸으니, 세례와 성찬의 규례들이 얼마나 평범하고 단순하면서도 동시에 의미심장하며 감동적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사자들을 택하신 일에서도 동일한 원칙이 실제로 적용되는 것을 본다. 지극히 무식한 어부들을 택하셨으니 말이다.

일곱째, 그 기념물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적 하나됨을 인식하고 인정해야 할 것을 가르쳐 준다.👌

그 돌탑은 각 지파로부터 뽑힌 열두 명이 취한 열두 개의 돌을 가져다가(수 4:2) 길갈에 세운 것이다. 두 지파와 반 지파는 요단 강 동편에 기업을 이미 받았으므로, 이 기념물이 더욱 눈에 띄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됨을 나타내기 위해, 요단 강 서편에 세워진 이 돌탑이 아홉 개나 열 개가 아닌 열두 개의 돌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열왕기상 18장에서도 동일한 것을 다시 보게 된다. 그로부터 여러 세기가 지난 후 이스라엘의 북왕국과 남왕국이 서로 분열해 있을 때에, 엘리야가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았다"(31-32) 한다.

비록 눈에 보이는 현실과 괴리가 있었으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에 의지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택한 자들이요 형제들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현실적으로 갖가지 분파들로 나누어 있고 교단적인 장벽이 있으나,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들로 바라보아야 하며, 같은 가족에 속하여 동일한 관심사를 지닌 한 형제요, 한 자매들로 대해야 한다. 믿음의 가족 전체를 마음으로 포용하며 그들 모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