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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115] 밧단아람에서의 야곱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115] 밧단아람에서의 야곱

En Hakkore 2024. 3. 20. 11:57

이제 우리는 야곱의 열두 아들에게 붙여진 이름에 우리의 관심의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단순히 아들들에게 붙여진 이름뿐만이 아니라, 그 의미와 그러한 이름이 붙여지게 된 정황까지도 듣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여기에 우리가 꼭 배워야만 하는 매우 중요한 교훈들이 담겨 있음을 암시한다.

본장은 우리에게 훗날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는 열두 족장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여 준다. 열두 족장의 이름들의 의미와 그러한 이름들이 주어지게 된 정황이 이스라엘의 초창기 역사(歷史)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열두 족장이 태어난 순서와 각각의 이름들이 주어지게 된 정황이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歷史)의 진행 과정과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열두 족장들과 그들의 이름의 상징적인 의미와 그들이 언급되는 순서 등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와 함께 여기에서 죄인이 은혜로 구원받는 과정이 암시적으로 발견된다는 주장이 계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예를 들어 야곱의 첫째 아들 르우벤은 "보라 아들이라"를 의미한다.이것은 복음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바라보도록 초청받는다 -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다음으로 시므온이 오는데 그 이름은 "들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가리킨다. 믿음은 들음으로 오며, 복음의 약속은 "들으라, 그리하면 네 영혼아 살리라"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레위가 오는데, 그 이름은 "연합"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말씀을 들음을 통해 아들과 하나가 되는 복된 연합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찬송"을 의미하는 유다가 온다. 우리는 찬송을 의미하는 유다에게서 신자 안에 이쓰는 신적 생명을 나타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의 부요함으로 인해 즐거운 감사를 표현한다.

다음으로 단은 "판단"을 의미한다. 이것은 신자가 자신이 행한 것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에 대해 서로 스스로 단호하게 판결을 선언하는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그는 스스로를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서 간주한다.

다음으로 납달리는 "씨름"을 의미한다. 이것은 새 생명의 호흡인 기도를 가리킨다. 다음으로 "군대" 혹은 "무리"를 의미하는 갓은 신자가 하나님의 백성들과 더불어 교제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계속해서 야곱의 여덟 번째 아들인 아셀은 기독교적 교제의 결과를 가리킨다. 아셀은 "행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홉 번째 아들 잇사갈은 "값"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섬김을 가리킨다. 계속해서 "거함(dwelling)을 의미하는 스불론은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거할" 것을 가리킨다.

계속해서 "더함"(adding)을 의미하는 요셉은 하나님이 신실하게 거하며 부지런히 섬긴 자들에게 주실 상급을 가리킨다. 그리고 야곱의 마지막 아들 베냐민은 "나의 오른손의 아들"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직접적으로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마치 둥근 원처럼 처음에 시작한 것으로 다시 귀결된다. 그는 "처음이요 나중"이기 때문이다. 💕

이와 같이 야곱의 열두 아들 이름 뒤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숨겨져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여기에 예언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히브리 민족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알려지게 된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야곱(나중에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뀜)의 아들을을 좀 더 깊이 고찰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창세기 29장과 30장이 야곱의 열두 아들들의 초창기 역사(歷史)를 기록하고 있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들의 역사가 장차 그들로부터 이루어질 나라의 초창기 역사와 어떤 방식으로든 상응하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제 다시 독자들 앞에 그것을 제시하고자 한다.

앞에서 우리는 야곱의 열두 아들의 이름의 상징적인 의미를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창세기 29장과 30장이 열두 족장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이름을 지어 주게 된 정황을 기록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각각의 아들들에게 특정한 이름이 주어지게 된 이유가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아들들을 낳을 때마다 어머니들이 한 말이 성경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우리는 거기에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그녀들이 한 말을 드토록 주의 깊게 보존한 이유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야곱의 첫째 아들은 레아로 말미암아 태어났다. 그에게는 르우벤이라는 이름이 주어졌는데, 그러한 이름을 지어 주면서 그녀는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라고 말했다(29:32).

둘째 아들 역시 레아로 말미암아 태어났다. 그에게는 시므온이라는 이름이 주어졌는데, 그러한 이름을 지어 주면서 그녀는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라고 말했다(33절)

여기의 두 언급과 애굽에서의 이스라엘의 고통과 관련하여 출애굽기에 기록된 것 사이에는 놀라운 유사성이 있다.

첫째로, 우리는 출애굽기 2:25에서 "하나님이 잇라엘 자손을 돌보셨고"라는 말씀을 읽는다. 또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라고 말씀하셨다(3:7). 계속해서 하나님은 "내가 그들의 부르짖음으로 듣고"라고 덧붙이셨는데, 이러한 말씀은 시므온이 태어날 때 레아가 한 말과 상응한다(7 하반절).

이스라엘의 처음 두 아들이 태어날 때 그들의 어머니가 "괴로움"을 언급하면서 여호와께서 그것을 "돌보시고" "들으셨다"고 말한 것을 생각해 보라. 이와 유사한 말이 애굽 사람들에 의해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자손들의 초창기 역사를 묘사하는 구절에서 발견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고통"을 돌보셨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의 마음속에 오래 전에 레아가 했던 말이 있었지 않았겠는가? 💕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