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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113] 밧단아람에서의 야곱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113] 밧단아람에서의 야곱

En Hakkore 2024. 3. 20. 11:56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나를 섬기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29:15, 한글개역개정판에는 "나를 섬기겠느냐" 대신 "내 일을 하겠느냐"로 되어 있음).

야곱의 지평선 위에 처음으로 먹구름이 낀다. 그리고 하나님의 징계의 회초리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여기에서 보응의 법칙이 놀랍게 작동하는 것을 발견한다. 야곱은 자신이 뿌린 것을 거두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것은 피상적으로 볼 때 분명치 않아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보도록 하자.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라. 그것은 아버지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두 아들이 태중에 있을 때 여호와께서 리브가에게 하신 말씀에서, 그것이 무슨 축복인지 안다. 그때 하나님은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을 것을 분명하게 선언하셨다 -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

여기에서 장자의 축복은 다름 아닌 섬김을 받는 것으로서 나타난다. 이와 같이 야곱의 악한 방법으로 이삭으로부터 얻고자 간절히 바란 것은 섬김을 받는 자로서의 존귀와 위엄의 위치였다. 섬기는 자가 되는 대신 그는 섬김을 받는 자가 되기를 원했다. 한편 여기에서 라반이 야곱에게 한 말을 주목해 보라.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나를 섬기겠느냐."

한 달 동안의 환대 이후 라반이 야곱에게 한 최초의 말은"섬김"과 관련한 것이었다. 야곱은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 위해 "교활한 계획"을 꾸몄다. 그런 야곱이 여기에서 "교활한 계획"을 꾸미는 자의 손에 떨어진 것을 기뻐했다.

그러나 자신의 조카였음에도 불구하고 라반은 야곱이 언제까지나 손님으로 남아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야곱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더욱 증대시키고자 했다. 라반은 야곱에게 그의 신분을 분명하게 규정해 준다. 그가 자신의 집에 남아 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삯을 받는 종의 위치로서 그런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가 "품삯"의 문제를 제기한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이것은 야곱에게 매우 쓰라린 분깃이었으며, 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그는 악을 행한 자의 길이 험하다는 사실을 배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한층 더 주목할 만하다.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29:16-28).

인용문이 다소 길기는 하지만, 여러들의 충분한 이해를 위해서는 이렇게 길게 인용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야곱에게 가르치고 계셨던 첫 번째 교훈이 바로 겸비한 순복의 교훈이었음을 보았다. 그가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거부했다면, 그는 사람의 종으로서 사람에게 순복하며 "섬기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야곱이 배워야만 하는 두 번째 교훈이 장자의 권리(여기에서는 "장녀의 권리" 가 될 것임)를 존중하는 것이었음을 발견한다. 이것은 야곱이 에서와 관련하여 무시한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형과 관련하여 무시한 것을 아내와 관련하여 순복하며 따라야만 했다.

또 세 번째로 하나님이 여기에서 어떻게 야곱의 인내할 줄 모르는 조급함을 고쳐 주고 계셨는지 주목하라.♡ 그가 격노한 에서로부터 도망쳐 수많은 시련에 부닥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성취될 때를 기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창 25:23). 그렇게 볼 때 그가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기다려야만 했던 것은 얼마나 적절한 일인가! 그는 그녀와 혼인한 후에도 그녀를 위해 또 다시 7년을 더 섬겨야만 했다.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기에 앞서, "신적 보응의 원리"라고 일컬어지는 성경의 매우 중요한 원리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욥 4:8). 라반이 야곱을 다루는 것에서 우리는 속인 자가 속임을 당하는 것을 본다. 성경 전체에 걸쳐 우리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원리를 발견한다. 그것의 구체적인 실례들은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다.

애굽 왕 바로는 히브리인이 아들을 낳으면 "나일 강에 던져" 물에 빠져 죽게 하라고 명령했다(출 1:22). 그리고 그는 마침내 물에 빠졌다(출 14:28). 또 고라는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 틈이 벌어지도록 만들었다(민 16:2, 3). 그리하여 하나님은 땅으로 하여금 그를 삼키도록 틈을 만드셨다(민 16:30).

또 "아도니 베섹은 많은 사람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잘랐다가 나중에 자신도 똑같이 그렇게 잘림을 당했다. "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삿 1:6, 7).

또 아합왕은 나봇을 죽이고 개들이 그의 피를 핥도록 만들었다(왕상 21:19). 그리고 우리는 아합이 죽고 사마리아에 묻혔을 때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으매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으니"라는 말씀을 읽는다(왕상 23:38).

또 하만은 모르드개를 매달기 위해 교수대를 준비했지만, 자신이 그 위에 달랐다(에 7:10). 또 다소의 사울은 스데반이 돌에 맞는 것을 합당히 여기며 서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나중에 루스드라에서 유대인들이 그를 돌로 친 것을 읽는다(행 14:19).

그러나 신적 보응의 원리가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실례는 여기의 야곱의 경우이다.♡

첫째로, 그는 아버지(father)를 속였다가 나중에 외삼촌(father-in-law)으로부터 속임을 당했다. 그는 작은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속이기 위해 큰 아들로 위장했다가, 나중에 아내로서 라반의 작은 딸 대신 큰 딸을 받았다.

둘째로, 우리는 야곱의 아내들 사이에서도 동일한 원리가 작동하는 것을 주목할 수 있다. 라반은 야곱에게 레아를 주는 것으로 라헬을 속였다. 그리고 우리는 나중에 라헬이 라반을 속이는 것을 보게 된다(창 31:35).

셋째로, 우리는 팥죽 한 그릇으로 에서의 장자권을 산 야곱에게서 장사꾼적인 기질을 발견한다. 그리고 우리는 야곱의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꾼 라반에게서 똑같은 기질을 보게 된다(창 31:41을 보라).

마지막으로, 야곱은 자신의 손과 목을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덮음으로써 아버지 이삭을 속였다(창 27:16). 그리고 우리는 나중에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의 옷을 "염소 새끼의 피"로 적심으로써 아버지 야곱을 속이는 것을 보게 된다(창 37:31). 또 야곱이 이삭을 속인 것이 그의 사랑하는 아들(에서)과 관련된 것이었던 것처럼, 야곱이 그의 아들들에게 속임을 당한 것도 그의 사랑하는 아들(요셉)과 관련된 것이었다.

악한 일을 행한 것과 그것의 악한 결과 사이의 연관관계가 위에서 열거한 경우들처럼 명백하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에는 반드시 공정한 보응이 따르는" 사실을 확증하는 충분한 증거를 주셨고 또 여전히 주고 계신다(히 2:2).

이러한 "공정한 보응"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임하는 것은 그의 진노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랑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하나님은 "공정한 보응"이 임하는 것을 통해 그들의 마음과 양심을 움직이시고, 그럼으로써 그들이 자신들이 행한 악한 일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도록 만든다.♡

반면 악인들에 대하여는 종종 반대로 된다. 많은 경우 그들은 이 땅에서 푸른 월계수처럼 번성한다. 그러나 마침내 크고 흰 보좌(계 20:11) 앞에서 책이 펼쳐지고, 그들은 "자신들이 행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부디 이 글을 통해 "다가올 진노로부터 피하라"는 음성을 듣기를 바란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피하라. 또 그리스도인들은 이 글을 통해 죄가 얼마나 악독한 것인지 새롭게 배우기를 바란다. 그리고 육체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도록 간절히 은혜를 구하기를 바란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 💕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