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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55] 붉은 줄(여호수아 2:1-24)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55] 붉은 줄(여호수아 2:1-24)

En Hakkore 2024. 2. 13. 12:35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수 2:12-13).

인간적인 친절이 굳어져버린 굳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라합의 이런 요구를 매우 주제 넘는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그녀의 마음이 버림받은 몹쓸 죄인인 자신을 주께서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가 가득하여 믿음으로 신적인 긍휼의 무한함에 대해 무언가를 감지하였고, 그리하여 그런 하나님이시라면 그녀의 가족 전부에게 기꺼이 은혜를 보여 주실 것임을 믿었다고 본다. 그녀는 실망하지도 않았다.🫰

더욱이, 헨리(Henry)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자비를 베푸는 자들은 자비를 받기를 기대하는 법"이다. 에벳멜렉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자비를 베푼 일에 대해 하나님은 그가 최악의 곤경에 처하여 있을 때에 "노략물 같이 목숨을 얻을 것"임을 약속하셨다(렘 39:18).

라합의 이러한 청이 그저 마음의 조급함의 표현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그 전체적인 기조에서 분명히 드러한다. 그녀의 언어가 믿음의 언어였다는 것은 그녀가 가나안이 이스라엘 앞에서 무너질 것임을 의심의 여지없이 확신하고 있었던 데에서 나타난다.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라"는 라합의 말은 그녀가 엄숙한 맹세가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는다는 것을 믿음으로 알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그녀는 "증표를 내라"고 함으로써 자신의 구원에 대한 보장을 요구한 것이다.

증표라는 단어는 창세기 9장에서 하나님이 무지개가 "언약의 증표"가 될 것임을 선언하신 데에서 처음 나타난다. 자신의 온 가족의 구원을 간청하는 라합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귀중한 모범이 된다.

우리는 우리와 가까운 사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자세를 가져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우리가 자연스러운 애정조차 없는 자들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밖에 안 될 것이다.

그런 자연스런 애정이 만일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그에게 간청이 아니라 지시를 한다면,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러한 애정을 가져야 마땅하다.

"너희의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그분이 라합의 믿음에 그대로 응답하시니 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른다(수 6:22).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138

● 여호수아 6장 23절.
"정탐한 젊은이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의 부모와 그의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의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의 진영 밖에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