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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57] 노아의 타락과 노아의 예언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57] 노아의 타락과 노아의 예언

En Hakkore 2024. 3. 16. 10:36

"노아가 포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9:20, 21).

이러한 말씀은 우리에게 성령께서 구약과 관련하여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라고 말씀하신 것을 일깨워 준다(롬 15:4). 그러면 우리는 노아의 타락의 슬픈 이야기로부터 무슨 교훈을 배울 것인가?

첫째로, 노아의 타락으로부터 우리는 성경의 신적 영감(靈感) 에 대한 놀라운 증거를 발견한다.♡

성경은 인간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성경에 나타나는 영웅들은 본래의 모습 그대로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가장 훌륭한 인물들의 죄까지 솔직하게 기록된다.

사람은 종종 오류를 범하며, 특별한 사람들의 결함을 감추기를 좋아한다. 만일 성경이 신적 영감과 무관하게 단순히 역사가들이 기록한 것일 뿐이라면, 거기에 등장하는 특별한 인물들의 결함은 간과되었을 것이다. 설령 기록되었다 하더라도, 정상을 참작한다든지 혹은 결함을 가능한 가볍게 하려는 시도가 행해졌을 것이다.

노아를 흠모하는 어떤 사람이 노아의 역사(靈感)를 기록했다면, 그는 틀림없이 노아의 타락 이야기를 빠뜨렸을 것이다. 그의 타락 이야기가 있는 그대로 기록되고 그의 죄를 변명하려는 어떤 시도도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은 모세를 비록한 모든 역사가들이 신적 영감에 의해 성경을 기록하고 거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을 진실에 기초하여 있는 그대로 묘사했음을 증명한다.

둘째로, 노아의 타락으로부터 우리는 사람이 최선의 상태에서조차 결국 아무것도 아님을 배운다.♡ 다시 말해서 그의 타락 이야기로부터 우리는 인간 본성의 전적 부패를 보게 된다.

창세기 9장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다룬다. 그 이전 시대나 그 이후 시대와 마찬가지로, 그 시대 역시 실패와 함께 시작된다. 어떤 시험을 하든, 결국 드러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설 수 없다는 사실이다.

노아는 멸망의 빗자루가 모든 쓰레기들을 쓸어버리고 난 이후의 정결한 환경 가운데 놓였다. 범죄한 자들에 대한 하늘의 심판의 엄중한 경고가 그 앞에 펼쳐졌다. 또 그에게 하나님의 복이 선포되었으며, 주권자의 칼이 맡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고 공공연한 악 가운데 떨어졌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약하다는 사실과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 외에 다른 아무 소용없다는 사실을 배운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갈 6:15).

셋째로, 노아의 타락으로부터 포도주의 위험과 무절제가 가져다 주는 두려운 해악을 배운다.♡

여기가 성경에서 포도주가 처음으로 언급되는 곳이다. 그런데 포도주가 처음으로 언급되는 곳이 술 취함과 수치와 저주와 연결되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성경은 술 취함에 대해 엄중하게 경고한다. 술 취함은 하나님에 대한 죄다. 그것은 그의 긍휼을 오용(誤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이웃에 대한 죄다. 그것은 궁핍한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필수품을 빼앗으며 그들 앞에 악한 모범을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죄다. 그것은 우리로부터 단정함과 절제와 성실함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술 취함은 일반적으로 또 다른 악도 만들어낸다. 노아의 경우에도 그랬다. 노아의 죄는 그의 아들이 또 다른 죄를 짓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넷째로, 노아의 죄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경계하며 깨어 기도해야 할 필요성을 배운다.♡

신자는 넘어지는 것으로부터 결코 면제되지 않는다. 우리 안에 여전히 악한 본성이 남아 있으며,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의지(依支)하는 것 외에 어떤 것도 우리를 세상의 유혹에 맞설 수 있도록 해 주지 못한다. 모든 성도들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겨야만 한다(고전 10:12).♡

시험의 때에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은 나이도 아니고 성품도 아니다. 여기에 600년 동안 세상의 유혹과 맞섰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 육체의 정욕에 굴복하고 말았다. 이것은 "우리를 깨우치기 위해" 기록된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고전 10:11).

우리는 바리새인들처럼 노아를 심판하는 자리에 앉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대신 "스스로를 살피면서 우리 역시도 시험을 받을까" 조심하자.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 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 과거에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의 경험조차도 미래에 새로운 유혹에 노출되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노아의 타락은 하나님의 모든 종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발한다. 창세기 9장 마지막 부분이 예언에 이어 노아와 관련하여 기록된 것은 그가 죽었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의 생애의 마지막 300년은 공백으로 남아 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