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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51] 붉은 줄(여호수아 2:1-24)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51] 붉은 줄(여호수아 2:1-24)

En Hakkore 2024. 2. 13. 12:31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는 말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라합은 여호와께서 아브라람과 그의 후손에게 주신 그 약속들을 들었고 믿었으며, 그분이 과연 긍휼을 베푸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심을 지각하였고, 마음 속에 소망을 갖게 된 것이었다.

이 긍휼의 그릇을 구별하여 그에게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바라보라. 복음을 그저 듣기만 하는 것 외에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만 우리 속에 믿음이 생겨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듣는 귀와 보는 눈은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니라"(잠 20:12).

"오직 "전한 것"을 믿는 자에게 "여호와의 팔"이 나타나는 법이다(사 53:1). 훗날 루디아의 경우가 그랬던 것처럼, 라합도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말씀을 따르게 하신 것이다(행 16:14). 믿지 않은 라합의 동료들의 사례가 보여 주는 경고는 과연 엄중하다.🫰

우리가 아는 한, 그들은 라합이 들은 것과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그런 소식에 회의론이나 경멸의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소식에 깊히 영향을 받았고, 공포에 떨었다. 하나님의 심판이 애굽 사람들과 인근의 아모리 족속에게 임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들은 이제 곧바로 그들의 차례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째서 즉각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며 간절히 부르짖지 않았을까?

이렇게 묻는다면 전도서 8:11의 다음 말씀이 그 해답을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제시해 준다.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전 8:11).

회개를 위한 여지가 주어졌으나,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군대가 여리고 성 둘레를 행진하던 그 엿새 동안 회개할 기회가 그들에게 주어졌으나, 그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이스라엘 군대가 다시 돌아가자, 여리고의 주민들은 계속해서 마음을 완악하게 했다.

오늘날 우리 주위의 대다수의 사람의 모습이, 심지어 이따금씩 하나님의 종들의 신실한 사역을 통해 경고를 받은 이들의 모습이 이와 같은 것이다.🥺

본성적인 두려움과 불편한 양심의 흔들림이 일어나도 금방 가라앉는다. 영적인 뿌리가 없으니 견디지 못한다. 여리고 성의 모든 사람 중에 오직 한 사람만이 악인을 무너뜨리는 여호와의 역사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서, 신적인 감동을 받아 반응했다.

흔히 수많은 염소가 참된 양 떼들과 함께 섞여 있어서, 멀리서 보거나 혹은 겉만을 보면 마치 양떼가 상당히 규모가 큰 것처럼 보이나, 하나님의 양 떼의 숫자는 언제나 극히 적었다. 숫자만 적은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에 고립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흩어져" 있으니 말이다(요 11:52).🐑

다윗은 이렇게 외쳤다.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위의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시 102:6-7)

이런 다윗의 경험은, 결코 유독 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생각과 그분의 길은 우리의 것과 같지 않고, 무한히 더 지혜롭고 더 나으며, 오직 지정된 눈만이 그것을 감지할 수 있다. 외로운 양 떼를 염소와 늑대의 무리 중에서 보존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보호의 능력이 더욱 놀랍게 드러나 그가 영광을 받으시나, 그 외로운 신자는 더욱 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이다. 아멘!

그런데 바로 이러한 성도의 외로움이야말로 그의 믿음의 순전함을 드러낸다. 주변의 관계하는 모든 이가 믿는 것을 믿는다면 거기에 놀라울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회의론자들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믿음이 나타난다면 주목할 만한 것이다.

다른 모든 사람이 악을 위하여 뭉쳐 있을 때에 홀홀단신으로 의로운 대의를 위하여 일어선다는 것은 그야말로 희귀한 일이다. 그런데 라합이 바로 그랬다. 여리고에는 그녀가 함께 교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마음에 용기를 주고 경건한 조언과 모범을 통해 힘을 불어넣어 주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그녀로서는 과연 하나님의 은혜로 충족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기에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목록을 천천히 살펴보고, 그 각 사람이 처한 정황을 돌아보라.

아벨이나 에녹이나 노아가 과연 영적인 교제를 나눌 사람이 있었을까? 요셉과 모세와 기드온이 과연 주위의 형제에게서 도움을 받은 일이 있었을까? 과연 엘리야, 다니엘, 느헤미야에게 용기와 담대함을 불어넣어 준 사람이 주변에 있었을까?

그러니 여러분이 전혀 혹은 거의 홀로 걸어가도록 부르심을 받는도다 해도,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나 함께 길을 가며 여러분에게 도움을 줄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시기 바란다.💕

지난 6년 동안 이 잡지를 갖가지 다른 영적 싸움을 벌이는 수많은 이들에게 보내고 있으나,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들 자기들의 처지가 라합의 경우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려 왔었다. 어떤 이들은 영국인들과, 어떤 이들은 유럽인들과, 어떤 이들은 미국인들과 함께 있었고, 어떤 이들은 해군에, 또한 육군과 공군에 속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의 대답은 똑같이 동료 그리스도인들과의 접촉이 완전히 끊어져버렸다는 것이다.

"성경 연구지"가 해군의 여러 예하 부대의 소속된 사람들에게 보내졌고, 또한 그들이 깊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선단에 흩어져 불경한 자들에 둘러싸여 있는 처지였다.

주의 뜻이라면 얼마든지 그들을 한데 모으셔서 동일한 배에 배속되도록 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다. 그가 그렇게 하시지 않은 것은 그들의 선(善)을 위함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분명 달리 일을 지도하셨을 것이다(롬 8:26).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130

● 요한복음 11장 52절.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 로마서 8장 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