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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4] 서론1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4] 서론1

En Hakkore 2024. 2. 10. 11:36

그리스도인 혹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하여 우리의 사고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면, 이처럼 우리에게 주는 수 많은 중요한 교훈을 모형으로(typically, 혹은 예표로) 담고 있는 이 책의 내용들을 우리들 자신에게 올바로 적용시키는 데에 어려움이 있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우리의 구원과 관련하여 우리의 시각을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만 제한시키고, 그 구원과 관련하여 감당해야 할 우리의 책무에 대한 모든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고의적으로 눈을 감아버린다면, 가나안이 이스라엘에게 값없이 베풀어진 선물이요 그 백성들이 오직 은혜로만 거기에 들어갔다는 사실과,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을 얻기 위해 일일이 싸워야 했다는 사실을 서로 어떻게 조화시켜 이해해야 할지 난감해질 것이다.🙁

그러나 "영생"이 하나님의 선물이요(롬 6:23), 동시에 신실함으로 쟁취해야 할 "면류관"(계 2:10)이며, 그리스도인의 유업이 어린양의 피로써 값 주고 사는 것일 뿐 아니라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에게 베풀어지는 "상(賞, 골 3:24)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 모형이 어떻게 원형(原型:antitype)을 제시하는 지를 깨닫는 데에 전혀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생명으로(즉, 하늘로, 영광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4).

그리고 "인도하는"(사 35:8) 길은 오직 개별적인 실천적 거룩의 길 하나밖에는 없다.🍇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4).

그 "길"은 좁은 길이다. 세상에 대해 문을 닫아버리고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을 완전히 차단시키기 때문이다. 과연 그렇다. 그 길을 걷는 소수의 사람들은 그 이전에 이미 영적 생명에 참여하는 자가 된 자들이다. 왜냐하면, 중생하지 않는 자는 아무도 그 길을 걷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과연 그 생명에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들이 마지막까지 그 길에서 인내해야 하고, 그 길을 버리려는 유혹들과 싸워야 하고, 모든 장애거리를 다 극복해야 한다. 구원은 과연 은혜로, 오직 은혜로만 된다. 인간의 공로는 끼어들 자리가 없다. 하지만 선행이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은혜가 우리에게 베풀어진 것은 바로 우리를 그 선행들에 합당하게 만들기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중적인 진리와, 또한 그 필수적인 각 부분들의 완전한 균형을 복된 실례들을 통해 충격적으로 접하게 된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자기들의 책임을 수행하는 그의 백성들의 역사가 여호수아서에서 함께 나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가나안은 이스라엘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그 땅을 소유하기 위해 싸워야 했다. 이 사실을 조심스럽게 상고하기 바라고, 그것이 모형적인 성격을 지녔음을 유념하기 바란다.

여러분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일이 광야에서 갖가지 시험들을 겪은 끝에 일어났다는 점을 계속해서 유념해야 한다. 이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리가 이 생이 끝날 때에 하늘에 들어가게 될 것을 미리 보여 주는 그림자라 한다(계 14:13).😊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일을 여호수아서에 기록되는 모든 사실에 비추어 바라볼 때, 그 이전의 일들을 회심 이전에 영혼이 겪는 경험들을 보고, 또한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그 영혼의 새로운 삶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출애굽기에서는 죄와 사탄에 종노릇하는 자연인을 본다. 레위기에서는 그 사람을 향해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그의 거룩한 규례들을 알려 주시는 것을 본다. 민수기에서 그 사람이 크나큰 황량한 광야에 처하여 있는데, 이는 성령의 일깨우심을 받은 자에게 비쳐지는 세상의 모습이다.

그리고 신명기에서는 그 사람이 율법의 엄중함과 영적인 성격(spirituality)을 배우게 되며, 그것이 그의 자기 의(self-righteousness)를 여지없이 깨뜨리는 것을 깨닫게 되고, 또한 그가 원형의 팔레스타인에서 기업을 받기 위해서는 또 한 분의 모세가 그의 구원의 대상이 되셔야만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여러분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건이 그들의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새로운 단계의 시작을 정한다는 것과 역사가 회심한 영혼의 새로운 삶을 보여 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이 그 모형 속에 어떻게 결정적으로 선명하게 제시되는지를 면밀히 살펴보기 바란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애굽에서 나온 성인들이 아닌 제 2세대)였다. 그들은 새로운 지도자(모세가 아니라 여호수아)아래 있었고. 그들은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광야로부터 구원받아 가나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이미 죄를 깨닫는 시기를 지났고 믿게 된 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회심 때에는 옛 삶이 종결되고 새 삶이 시작된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사건이 광야 방황의 종결이었듯이, 바로 회심 때에 영혼이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의 약속이 참됨을 제한한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일이 가나안 정복의 시작이었던 것처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바 "믿음의 선한 싸움"을 회심 때에 시작한다. 그리스도인의 안식의 그러한 두 가지 면이 히브리서 4장에 잘 제시되어 있다.

첫째,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히 4:3)

중생하고, 각성하고, 죄를 깨달은 영혼이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 그의 죄짐은 사라지고, 양심의 평안과 영혼의 안식과 하나님이 받아 주셨다는 확신이 그의 것이 된다. 그러나 아직은 그가 하늘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외부와 내부의 원수들을 이제 의식하게 된다.

이제는 육체를 죽이고, 마귀를 대적하며, 세상을 이기도록 부름을 받는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힘으로가 아니라 주의 힘으로, 여호수아의 원형이신 그 분의 인도하심 아래에서 그리하는 것이요, 약속된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리한다.💕

둘째, 히브리서 4:11은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라고 명령한다.

"힘쓰는 것"(참조, 요 6:27; 고후 5:9)이 반드시 필요하다. "의의 면류관"(딤후 4:7-8)을 얻기 위해서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며, 믿음을 지키는 것이 요구된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21

• 요한복음 6장 27절.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개역개정)

• 고린도후서 5장 9절
"그러므로 우리가 몸 안에 머물러 있든지, 몸을 떠나서 있든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새번역)

• 디모데후서 4장 7-8절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