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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22] 타락 3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22] 타락 3

En Hakkore 2024. 3. 14. 10:49

4) 죽음의 존재

모든 것에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이 있는데, 그것은 죽음이다. 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영혼을 소유한다. 그런데 어째서 사람들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살지 못하는 것인가?

썩음과 파괴와 같은 것들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과학이나 철학은 아무런 대답도 주지 못하며, 또 다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갇히게 된다. 죽음은 죄의 삯이며, 죽음이 보편적인 것은 죄가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죄와 죽음이 보편적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대답은 이것이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5) 인류의 현재적인 마비상태

모든 존재와 유기체는 필연적으로 자라며, 또 자라야만 한다. 동물과 식물뿐 아니라 심지어 수정(水晶)까지도 이러한 법칙에 복종한다. 그런데 역사(歷史)가 보여 주는 것처럼 유독 유기체적인 전체를 구성하는 인류만이 그러한 법칙을 본래의 정상적인 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이 창조하셨을 때의 그가 아니다. 타락을 부인하는 사람은 이러한 심원(深遠)한 신비에 대해 아무런 빛도 갖지 못한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인간은 지식과 선과 행복에 있어 계속해서 자랄 것이며 하나님과 점점 더 같아져 갈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365세 때에 하늘로 취함을 입은 에녹은 자신의 운명을 온전히 성취한 인간의 표본이며, 모든 사람이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분명한 모형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인간은 타락했으며, 그로 말미암아 궁극적인 의미에서 진보와 발전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인간이 진보하지 않은 - 혹은 그보다도 지금 진보하고 있지 않는 - 사실은 오늘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분야의 산물들을 과거 분야에서, 욥기나 혹은 시편과 필적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철학의 분야에서, 사람의 지적 발달과 정신적 삶에 있어 산스크리트어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은 현대 언어에 없다.

예술의 분야에서, 최고의 것을 여전히 우리는 고대 그리스로부터 빌려온다. 과학의 분야에서, 여전히 우리는 피라미드를 설계하고 건축한 사람들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일부 미라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치과학(齒科學) 분야에 있어 오늘날의 우리보다 뛰어났음을 보여 준다.

윤리의 분야에서, 유교의 뛰어난 윤리체계는 오늘날 우리가 성경 밖에서 가지고 있는 어떤 윤리체계보다 뛰어나다. 거대 문명의 분야에서, 어떤 것도 기독교 시대가 시작되기 수백 년 전에 꽃폈던 바빌로니아와 폐니키아의 문명을 능가하지 못한다.

여기에서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이 증명되는데, 그것은 유기체적인 전체로서 우리 인류가 아무런 실제적인 진보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반복하거니와, 모든 살아 있는 유기체들 가운데 계속해서 자라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러면 이러한 신비한 현상 즉 유기체임에도 불구하고 자라지 못하는 마비상태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는 이 유기체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심각하게 훼손되었으며, 인류의 지금의 상태는 본래의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타락이 역사적(歷史的)인 사실이며 인간의 전체 역사를 정당하게 설명하는 유일한 설명이라면,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따르게 된다.

그리고 첫째로 인간은 타락한 피조물이라는 사실, 둘째로 인간은 죄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셋째로 인간에게는 구주가 필요하다는 사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복음이 근거하는 기초이다. 본성적으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 있으며, 잃어버린 존재로서 정죄 아래 있다.

그러면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새로운 창조"(new creation), 혹은 "새로운 피조물" 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옛 본성을 좀 더 낫게 계발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성령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새로운 본성"(new nature)을 받는 것이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든 무가치하며 쓸모없다. 💕

Arthur W. Pink 창세기강해 p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