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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355] 대단원(사무엘하 24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355] 대단원(사무엘하 24장)

En Hakkore 2024. 3. 11. 11:24

제사와 잔치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삼하 24:25a).

이것은 우리의 예표적 설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말이다. 여기에서 다윗은 "용압된 예배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나는 "용납된"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역대상 21장이 우리에게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셨다"(26절)라고 전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의 제사가 지존자께 받아들여졌음을 선포하는 것이다(레 9:24; 왕상 18:38-39 참조). 모든 은혜의 하나님은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 그들에 대한 자신의 승인의 징표를 보이심으로써 그들을 높이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윗의 강한과 그의 진정한 감사에 주목하라. 그는 제단 위에서 번제만 드렸던 것이 아니라 화목제도 드렸다. 화목제는 "교제"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번제의 제물은 제단 위에서 완전히 불타 없어지는 반면 화목제의 제물은 하나님, 제사장들, 그리고 제물을 바친 자가 나눠 갖기 때문이다. 즉 화목제에서는 제사에 참여한 자 모두가 자기 몫을 얻는다.

"여호와께서 천사를 명령하시매 그가 칼을 칼집에 꽂았더라"(대상 21:27).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삼하 24:25).

이것은 사무엘하에 대한 얼마나 놀라운 마무리인가! 하나님의 정당한 진노를 진정시키는 속죄의 제사가 드려졌고, 엇나가던 자가 그분과의 온전한 교제를 회복했다. 다윗은 성전이 세워질, 그리고 그 결과 이스라엘의 예배가 그곳에서 이루어질 장소를 찾았다.

그날 화목제에서 자기들의 몫을 얻은 모든 자들에게 슬픔이 변해 기쁨이 되었다. 그들이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제사를 드렸을 때 그들의 마음에는 어떤 생각이 들어찼을까? 그들은 하나님이 받으신 제사의 제물로 잔치를 즐겼다.

사무엘하는 그런 식으로 우리에게 다윗이 여호와와의 온전한 교제 안에 있음을 보여 주면서 끝난다. 이것은 영원에 대한 얼마나 복된 예시인가! 이것은 우리에게 탕자의 비유의 마지막 말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눅 15:23).

믿음으로 쓴 찬양의 시

사무엘하 24장과 역대기 21장이 보여 주는 두 가지 이야기에 더해, 시편 30편(아마도 그 사건 직후에 쓰였을 것이다)은 우리에게 그 당시 다윗의 마음의 움직임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추가적인 빛을 제공한다.🫰

스펄전(C. H. Spurgeon)이 지적했듯이, 이 시편은 "다윗이 성전 낙성 때 지은 시와 노래" 혹은 "시, 다윗이 성전 낙성 때 부른 노래"였다.

이 시편은 "믿음의 노래였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언급되는 여호와의 집은 다윗이 살아서 볼 수 없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찬양의 시편이었다. 왜냐하면 극심한 심판이 거두어졌고 큰 죄가 용서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편의 제목에 대한 번역은 역대상 22장에 나오는 다윗 자신의 말을 통해 분명하게 해결된다. "다윗이 이르되 이는[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가리킨다-역주]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하였더라"(1절).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시 30:1).

이 시편은 노래이지 불평이 아니다. 이 시의 주조(主潮)를 이루는 것은 이전의 고뇌와 대비되는 구원의 기쁨에 대한 체험적 깨달음이다. 여기에서 다윗이 언급하는 "원수"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사탄의 졸개들뿐 아니라 악한 영들로도 이해될 수 있다.

그들은 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의 타락과 슬픔과 징계를 기뻐할 준비가 되어 있다. 타락에서 회복되고 적들 앞에서 완전한 절망에 빠지는 일에서 건짐을 받은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시 30:2-3).

다윗이 하나님을 그분의 언약의 칭호를 따라 부르는 것은 아름답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여호와께서 치명적인 전염병을 그치게 하신 것은 그분의 언약에 대한 성실함 안에서였기 때문이다.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라는 그의 말은 그가 겪은 신랄한 고통에 대해 말한다. 그는 기도하기에는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부정확한 신음소리를 이해하시는 분을 향해 자신의 마음을 쏟아놓았다.

그가 처한 곤경은 너무나 절망적이었고 여호와의 은혜로운 개입은 너무나 뛰어났기에, 다윗은 자신이 마치 죽음에서 회복된 것처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