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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350] 대단원(사무엘하 24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350] 대단원(사무엘하 24장)

En Hakkore 2024. 3. 11. 11:21

제단을 세우라는 명령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아뢰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소서 하매"(삼하 24:18).

이 이야기를 보충하는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거기에서 여호와의 천사가 갓에게 다윗에게 가서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아라우나의 다른 이름-역주]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대상 21:18)고 전하라고 명령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이 어둠의 시간에 복수하는 천사에 의해, 선지자 갓을 통해서, 다윗에게 구원이 선포되었다. 또한 그렇게 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삼손과 더불어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삿 14:14)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아주 복되다. 왜냐하면 "제단"은 용납된 예배자를 요구하며, 또한 여호와께서는 용납된 예배자를 제공하시지 않고서는 제단을 세우라는 명령을 내리시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첫 번째 예배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여호와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다(창 4:4)-먼저 그가 그리고 그 후에 그의 제물이 용납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다윗의 손에서 제물을 받고자 하시는 것은 그가 여호와께 용납되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였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제단을 세우라고 명령하신 것은,

첫째, 하나님이 철저히 그와 화해하셨으며, 따라서 이제 그가 마노아의 아내와 더불어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삿 13:23)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둘째, 그것은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의 평화는 제사를 통해서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위대한 제사이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초래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이 엄중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긍휼이 심판을 이기고 자랑했으나(약 2:13). 그럼에도 그분은 자신의 은혜가 의를 희생하고서가 아니라 "의로 말미암아"(롬 5:21) 다스린다는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 주셨다.. 생명을 위한 속죄를 이루는 것은 "피"다(레 17:1). 왜냐하면 하나님의 응보적 정의를 만족시키는 것은 피이기 때문이다.🫰

셋째,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은혜롭게 중지될 때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향해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나이다"(사 12:1)라고 말하며 그분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타작마당, 용서와 화해의 장소

우리는 사무엘하 24장 16절이 여호와의 천사가 예루살렘을 치기 위해 손을 들었을 때 그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있었다고 알려 주는 것에 지목할 필요가 있다.

이 이방인(아라우나는 여부스 사람이었다)의 평화로운 일-그는 예루살렘 성벽 밖에 있는 한적한 곡물창고 앞마당에서 조용히 밀을 탈곡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은 예루살렘 성 안의 혼란스러운 장면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그 안에서 다윗과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베옷을 입고 얼굴을 땅에 파묻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라우나 역시 위협을 받았다. 왜냐하면 복수하는 천사가 다가와 그 평화로운 타작마당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대상 21장이 전하듯이, "그때에 오르난[아리우나-역주]이 밀을 타작하다가 돌이켜 천사를 보고 오르난이 네 명의 아들과 함께 숨었다"(20절). 그러나 천사는 그들을 치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에게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그리스도의 희생의 토대 위에서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복되게 그리고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아라우나의 조용한 타작마당은 심판의 장소가 아니라 은혜와 용서와 평화의 장소가 되기로 정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그 타작마당은 어디에 위치해 있었던가? 아주 의미심장하게도 그것은 모리아 산 위였다.

비록 사무엘하 24장과 역대상 21장 어디에서도 그런 정보가 제공되지 않으나,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가질 필요가 없다. 성경은 게으른 사람들을 위한 책이 아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대하 3:1).🫰

그리고 모리아 산은, 그 이름이 암시하듯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여호와 이레"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곳이다. 그리고 그분은 그분의 언약에 이름에 걸맞게 그곳에서 다윗을 만나시고 그의 요구를 들어 주셨다.

이것은 얼마나 놀랍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복된가! 모리아 산은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가 나타나는 장소였다!

모리아 산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고 올라갔던 산이다. 창세기 22장 14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읽는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뉴톤(B. W. Newton)은 모리아는 "동일한 어근으로부터 나온 이름이며 출현(出現), 곧 공급자이신 여호와의 출현을 의미한다. 모리아 산과 그곳에서 제공된 것과 관련된 모든 생각들은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는 아브라함의 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3 p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