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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336] 대단원(사무엘하 24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336] 대단원(사무엘하 24장)

En Hakkore 2024. 3. 10. 11:10

징벌과 자책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삼하 24:10).

이것은 그가 거듭난 자였음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회개하는 것이야말로 신자의 징표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신자의 영에 맞서 무언가를 갈망할지라도 다른 한편으로 그의 영(거듭남을 통해 받은 본성)은 육에 맞서고 육의 행위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거의 일 년 동안 다윗은 자신의 죄에 무관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제 그는 우리가 아는 한 그가 저지른 악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이 없었음에도, 자신의 악한 행위를 의식했다.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자기 뜻을 추구했음에도 그의 마음이 완고해지지 않았고, 또 그의 양심이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음에도 여전히 죽지 않았음을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삶이 끝나갈 무렵에 자신이 잘못한 일 때문에 괴로워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윗을 영적 마비 상태에서 깨워 일으키고 그의 마음을 움직여 자신을 질책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듣지 못한다. 본문에는 단순히 사실만 진술되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다시 우리는 우리의 본문을 역대상 21장이 제공하는 보충적 이야기와 비교해 봄으로써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거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읽는다.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대상 21:7-8).

사무엘하 24장에서 다윗의 죄의 고백은 그의 "자책"에 뒤이어 나온다(10절). 그러므로 우리는 그 두 구절을 면밀하게 비교하는 일을 통해 그의 자책이 여호와께서 그가 한 일에 대해 진노하신 결과였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 두 책의 특징적 차이를 보여 주는 여러 가지 실례들 중 하나다. 사무엘서는 보다 외적이고(exoteric), 역대기는 보다 내적이다(esoteric). 즉 사무엘서는 주로 역사적 사실을 열거하는 반면, 역대기는 주로 그런 일들의 원인을 보여 준다.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대상 21:7).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윗이 추구했던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셨는지 알 수 있다. 그분은 감정이 상하셨다. 그분의 법이 완전히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치시매."

특별히 이 일이 다윗의 죄에 대한 고백(8)보다 그리고 그분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염병을 내리신 것(14절)보다 먼저 일어난 것에 주목하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전염병을 보내시기 전에 먼저 다윗의 마음을 치셨다! 그러나 그분은 다윗에게 등을 돌리지 않으셨다. 누군가 지적했듯이, "이스라엘의 체제 전체가 이 국가적 범죄 때문에 훼손되고, 더럽혀지고, 가혹한 심판을 받게 되었다.

이런 오만함은 하나님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설령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신 것처럼 즉시 이스라엘을 버리셨을지라도, 그분은 그들을 정당하게 다루시는 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그분은 그렇게 하시는 대신 주권적 은혜를 베푸셨다.💕

아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다. 그 두 진술을 하나로 엮되 다음과 같은 순서로 엮어 보라.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대상 21:7).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삼하 24:10).

이 두 진술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이루지 않는가?

즉 전자는 하나님의 역사를 드러내고, 다른 하나는 그 역사가 그분의 종에게 낳은 결과를 보여 주지 않는가? 이제 하나님은 다윗이 마음을 치심으로써 그로 하여금 그분의 큰 진노를 느끼게 하셨다.

다윗은 하나님의 자식이었으면서도 여전히 유혹을 받아 잘못을 저지르고 수치와 슬픔을 초래했다. 그러나 그가 회개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아니다 베드로만큼이나(눅 22:32) 그 역시 그럴 수 없었다.

하나님께 버림 받은 자들의 마음은 완고해진다. 그러나 의로운 자들은 그렇지 않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이 그의 죄에 대해 무관심한 상태로 남아 있게 하시지 않았고, 오히려 은혜롭고도 그로 하여금 양심의 가책과 자책을 느끼게 하셨다.

그리고 다윗의 양심은 "화인"(딤전 4:2) 맞은 것처럼 되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의 영향력 앞에서 민감하고 신속하게 반응했다.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이것은 우리를 위한 얼마나 큰 경고인가!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향해 얼마나 큰 소리로 말하는가! 이것은 얼마나 엄중하고 유익한 교훈을 제공하는가!🫰

다윗이 자신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리라고 상상했던 바로 그 일이 오히려 그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 상황은 늘 그렇다. 사탄의 유혹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확실하게 문제를 초래한다. 우리 앞에 드리워진 미끼의 금박에 미혹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파멸의 원인이 된다.

하와와 디나(창 34:1-2)와 아간(수 7:1)이 그러했다. 다윗은 오만한 생각에 탐닉하면서 자기 왕궁의 군사력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는 것이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일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자신의 어리석은 짓에 대해 한탄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어리석은 짓을 자기만족이라는 옷으로 꾸미는 것은 얼마나 미친 짓인가! 죄의식은 그리스도인의 인간적인 기쁨을 무뎌지게 할 뿐 아니라,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다"(잠 23:32).🌱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3 p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