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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86] 요단 강을 건너다(여호수아 3:7-17)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86] 요단 강을 건너다(여호수아 3:7-17)

En Hakkore 2024. 3. 9. 10:57

홍해와 요단 강에서 일어난 이적들을 찬양하는 것은 비단 시편 114편만이 아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여호와의 의도에 대해 더 밝히 드러내주는 언어로 이 두 이적들을 서로 연결시킴으로써, 어느 사건이나 주제에 대해 완전히 조감하기 위해서는 성경과 성경을 조심스럽게 비교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고 필수적임을 가르쳐 준다. 각 본문마다 나름대로 전체의 내용에 공헌하니 말이다.

여호수아서에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위하여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와 언약의 신실함으로 행하심을 더 비중 있게 바라본다면, 하박국서는 그가 원수들을 향해 의로운 분노를 발하시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들이 지극히 끔찍한 우상 숭배와 말할 수 없는 부도덕에 몰입했었기 때문이다.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가득찼을 때"(창 15:16)에 하나님은 애굽 사람들과 가나안 족속들을 향해 거룩한 분노를 발하셨다.

하박국 3장은 지극히 회화적이며 장엄하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저 일부분을 인용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시내산을 포함해서 유다 남부에 걸쳐 있는 그 지역 전체에서 모습을 드러내시는 것으로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합 3:3).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합 3:6).

또한 그 다음에 오는 병행법적인 묘사에 드러나듯이 "그가 보신즉[그저 쳐다보시기만 했는데] 여러 나라가 전율하는" 것이다. 이 6절은 자연의 세력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실례로 보여 주는 "교과서"로 보아도 무방하다.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주께서 무적의 정복자로서 임하시니] 강들을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들을 노여워하심이니이까 바다를 향햐 성내심이니이까"(합 3:8).

이는 요단 강의 아랫물을 흩으시고 윗물을 한 곳에 쌓이게 하신 일을 지칭한다.

"산들[시내산의]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합 3:10).

[마치 조물주에게 굴복하며 그에게 경배한다는 증표처럼(참조, 수 3:15, 16] 말이다.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합 3:11, 참조, 수 10:12,13).

"주께서 노를 발하사 땅을 두르셨으며 분을 내사 여러 나라를 밟으셨나이다"(합 3:12).

여호수아 3장으로 다시 돌아간다.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수 3:11,13).

"그대와 함께 하시는 언약의 하나님께 모든 나라와 모든 피조물을 명령하시고 통제하시고 사용하시고 처분하실 권능과 능력이 있도다. 그는 과연 '온 땅의 주'이시니, 그대가 필요하지도 않으시고, 그대에게서 유익을 얻으실 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가 그대와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은 그대의 존귀와 행복이요, 그가 기뻐하시면 모든 피조물이 그대를 섬기고 그대를 위해 사용될 것이다.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하나님으로, 찬양하고 예배할 때에 그가 온 땅의 주이심을 반드시 기억하고 그에게 경외와 신뢰를 드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들을 우리의 법칙으로, 그분의 약속들을 우리의 버팀목으로, 또한 그분의 섭리를 우리의 안내자로 삼는 한, 의무를 다하는 중에 그 어떠한 어려움을 당한다 해도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헨리 Henry).🥹

여기서 우리는 그 언약궤가 백성들보다 한참 먼저 행진한(수 3:4) 또 다른 이유를-앞에서 지적한 이유들과는 다른-보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실 그 이적을 온 회중이 더 잘, 더 선명하게, 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한참 뒤에 서게 되면 하나님의 그 영광스러운 권능을 더 확실하게 보고 그분을 찬양할 수 있게 될 것이었으니 말이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