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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324] 그의 용사들2(사무엘하 23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324] 그의 용사들2(사무엘하 23장)

En Hakkore 2024. 3. 9. 10:52

삼총사의 헌신

앞 장에서 우리는 다윗의 용사들 중 첫 번째 삼총사-아디노, 엘르아살, 삼마-의 공훈에 대해 살펴 보았다(8-12절). 그리고 이 장의 본문은 그들 세 사람이 함께 행했던 또 다른 영웅적인 행위를 기록하고 있는 아주 감동적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읽는다.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삼하 23:13).

이것은 우리를 사무엘상 22장에 실려 있는 사건으로 이끌어간다. 그때 아직 왕권을 얻지 못했던 이새의 아들은 사울 왕의 살해 음모를 피해 달아난 도망자 신세였다. 이들 세 사람이 다윗을 찾아간 것은 그가 인기와 권력을 누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들이 그의 대의를 지지했던 것은 그가 동굴에 숨어 수치를 당하고 약해져 있던 때였다. 이들은 좋은 시절만의 친구들이 아니라 그의 사심 없는 지지자들이었다.

"그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그때에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삼하 23:14).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의 운명은 서로 얼마나 다른가! 그들의 경험과 환경은 얼마나 기복이 심한가! 베들레헴은 다윗이 태어난 동네였다-이것은 그의 후손이자 주님이신 분의 성육신을 예시한다.

그러나 지금 그곳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의 적들에게 점령되어 있었다. 한때 하나님의 탁월한 종에게 쉴 곳을 제공했던 수많은 거주자들이 지금은 세상 사람들의 거처가 되어 있다.

다윗은 그 풍성하고 평온한 베들레헴에서 도망쳐 동굴로 숨어들어야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령 지금 초라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그것 때문에 낙심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께 잊혀진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은혜롭게도 다른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를 찾아 나서게 하셨고 자기들의 몸을 돌보지 않고 그를 섬기게 하셨다. 그러므로, 외로움에 빠진 신자들이여, 용기를 내라.

설령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세상의 친구들을 일으키지 않으실지라도, 그분은 당신의 마음에 주신 자신을 두 배나 더 사랑스러운 존재로 드러내실 것이다.💕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삼하 23:15).

청교도들 중 어떤 이들은 다윗이 여기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실제 물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메시아였다고 믿었다. 비록 그런 믿음이 본문의 이어지는 내용에 의해 입증되지는 않을지라도, 그곳에서 그런 훌륭하고 탐나는 물이 발견되리라는 그들의 믿음는 분명히 주목할 만하다.

베들레헴은 "떡 집"을 의미한다. 그리고 주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요 6:35)과 "생명의 물"(계 22:1)이라고, 즉 새 사람을 지지하고 그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시는 분이라고 선포하셨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매튜 헨리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는 이 구절에 기록된 내용이 "그의 약함을 보여 주는 듯 보인다"고 말했다. 즉 다윗은 하나님의 섭리가 그에게 제공한 것에 불만족함으로써 부적절한 애착과 본성의 갈망을 드러냈던 것이다.

때는 여름이었고, 날은 고통스러운 정도로 무더웠다. 그리고 다윗은 갈증을 느꼈다. 아마도 아둘람에는 마실 만한 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윗은 진심으로 외쳤다.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나님의 섭리가 제어하고 있는 것들을 갈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성결한 사람이라도 조심하지 않는다면 종종 그런 갈망에 굴복하고 만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 가지 덫과 악들로 이어진다.

이상하게도 다윗은 그가 아무런 적절한 이유를 댈 수 없었던 변덕에 빠졌다. 그런 생각을 품는 것은 악한 일이었고, 그런 악한 생각을 만족시키려 했던 것은 더욱 악한 일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다른 것들보다 더 즐겁고 유쾌해 보이는 무언가로 과도하게 향할 때 그런 마음을 제어해야 한다"(Matthew Henry).🫰

그렇게 하기 위한 최상의 그리고 아마도 유일한 방법은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엡 5:20)는 명령에 유의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자신이 현재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있음을-우리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을 열망하는 것이 아니라-드러내는 것이다.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삼하 23:16).

이것은 이 용감한 사람들이 자기들의 지도자를 얼마나 존중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그를 섬기기 위해 얼마나 기꺼이 아주 위험한 일에 뛰어들었는지를 보여 준다.

우리는 이때 다윗이 왕관을 얻지 못했으며 사울을 피해 달아난 도망자 신세였으며, 자기를 위한 그들의 용맹한 노력에 대해 보상할 만한 위치에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그는 사람들에게 베들레헴에서 물을 길어오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지목해 그 일을 맡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로서는 자기들이 사랑하는 주군이 그것을 원했다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그들은 블레셋 사람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윗을 기쁘게 하려는 열망으로 가득했던 그들의 마음에는 적에 대한 두려움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는가?

다윗의 대형이신 분에 대한 우리의 헌신은 그들의 헌신과 비교할 때 얼마나 허약한가! 그들이 마주해야 했던 위협과 비교할 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장애물들은 얼마나 사소한가!🌱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3 p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