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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257] 압살롬의 죽음 2(사무엘하 18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257] 압살롬의 죽음 2(사무엘하 18장)

En Hakkore 2024. 3. 4. 13:16

방자한 요압

상황은 다윗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이 유명한 전사를 고용하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통치 초기에는 이 오만한 신하에게 제압되지 않았다. 오히려 다윗의 힘은 점점 강력해졌고, 사울의 잔당들은 흩어졌으며, 그는 명목상이 아니라 실제로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따라서 다윗의 왕좌는 법으로뿐 아니라 실제로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따라서 다윗의 왕좌는 법으로뿐 아니라 여론에 의해서도 뒷받침되었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듣는 지경에 이른다.

"온 백성이 보고 기뻐하며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무리가 다 기뻐하므로"(삼하 3:36).

결과적으로 그는 이제 그로 통치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고 그렇게 했다. 왜냐하면 얼마 후 우리는 그가 그 자신의 결단으로 요압을 자기 군대의 사령관으로 임명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분명했다.

요압은 다윗이 시온성을 공격하면서 "누구든지 수로로 올라와 다윗의 혼이 미워하는 여부스인들과 절름발이와 소경을 치는 자는 우두머리와 대장이 되리라"(삼하 5:8, "Whosoever getteth up to the gutter ... he shall be chief and captain-역주)고 약속했고, 요압은 그 말을 따라 행동한 첫 번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무엘하 8장과 10장을 면밀히 읽는다면, 우리는 이 시기에 다윗이 아무런 제약이나 경쟁자 없이 통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다윗이 그의 생애의 밝은 시기에 이룬 위업들, 나라 밖에서 떨쳤던 그의 용맹과 나라 안에서 펼쳤던 강력한 정책, 그가 자신의 나라에 불어넣은 힘, 그리고 그가 이웃 나라들로부터 받았던 존경 등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그후 그는 무서운 타락에 빠졌고, 그 악한 씨앗으로부터 아주 비통한 열매를 거둬야 했다. 그 이후 우리는 요압이 점차적으로 전에는 갖고 있지 않았던 권력을 얻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점차 자기의 계획에 맞춰 다윗의 명령을 이행하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하면서 문제를 제멋대로 처리했고, 결국,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다윗과 그의 적법한 후계자에 맞서 모반을 일으킬 정도가 되었다(왕상 1:1-7 참조)

사무엘하 14장에 기록된 사건은 내가 위에서 지적한 내용을 잘 예시한다. 거기에는 우리는 다윗의 손이 묶여 있는 것과, 이 압제자에게서 벗어나려는 그의 모든 노력이 미약했을 뿐 아니라 효과도 없었던 것과, 압살롬에 대한 그의 징계가 성공적으로 저항에 부닥친 것을 보았다.

압살롬을 추방자에서 불러와야 한다고 외쳤던 사람은 비록 드고아 과부의 입을 빌리기는 했으나, 요압이었다. 왕이 의심이 나서 물었다. "이 모든 일에 요압이 너와 함께 하였느냐"(삼하 14:19). 그럼에도 그는 그의 뜻에 굴복했다.

요압 편의 이런 움직임은 왕을 곤경에 빠뜨림으로써 백성들로부터 좋지 않은 평가를 받게 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그는, 이후의 일이 분명하게 보여 주듯이, 압살롬에게 아무런 애정도 갖고 있지 않았다.

압살롬의 반역 기간 중에 요압은, 우리가 예상할 수 있듯이, 다윗에게 충성했다. 그는 다윗의 정권을 전복시켜 다른 정권이 들어서게 하려는 그 어떤 의도도 갖고 있지 않았다. 요압은 압살롬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온 힘을 다해 그에게 저항하려 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현재의 정권이 지속되기를, 그것도 다윗에 의해 지속되기를 바랐다. 그럼에도 그가 압살롬과 맞서 싸운 것은 다윗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니었다. 이것은 그가 다윗이 그의 장수들에게 내렸던 분명한 명령, 즉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내우하라"(삼하 18:5)는 명령을 드러내놓고 거역하는 것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요압은 그 명령에 유의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다윗의 명령에 대해 아무런 존경심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이 명령을 위반한 것보다 더 고의적인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아마도 이것은 그가 저지른 가장 오만한 짓이었으니라.😨

그가 압살롬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다윗의 명령을 잊은 것은 격렬한 전투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압살롬이 무력하게 매달려 있는 곳으로 다가가 아주 냉혹하고 신중하게 그를 살해했던 것이다.

아니다, 만약 요압이 다윗을 사랑하고 그를 친구로서 존중했다면, 그는 결코 다윗의 마음의 고뇌를 그토록 거칠게 조롱하고 그로 하여금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삼하 18:33)하며 부르짖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이 타락한 반역의 주모자를 제거함으로써 초래한 공적 유익이 무엇이든, 다윗의 은밀한 죄책을 공유하고 있는 그가 이제 더 이상 다윗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그는 자기가 갖고 있던 세 개의 작은 창으로 압살롬의 심장을 찌른 후 태연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윗은 자기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었다. 곧 살펴보겠지만, 이 사건은 앞선 사건의 일부다. 오만하고 무자비한 요압이 있다. 그리고 한때 나라를 지배했으나 이제는 영적으로 쇠약해지고 고통 때문에 길들여진 다윗이 있다. 그 강력했던 자가 얼마나 비참하게 무너졌는가!🥺

그의 욕망과 그가 흘린 피가 그를 얼마나 깊은 개인적 슬픔과 공적 치욕속으로 몰아넣었는가?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3 p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