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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193] 회개(사무엘하 12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193] 회개(사무엘하 12장)

En Hakkore 2024. 2. 28. 16:48

부자의 행인 접대

하나님은 자기 백성 중 누구라도 영적 무감각이라는 상태에 무한정 남아 있도록 방치하시지 않는다. 조만간 그분은 숨겨진 어둠의 일에 빛을 비추시고, 그런 일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시고, 그들로 하여금 그것에 대해 한탄하게 하시고, 그들을 이끌어 회개케 하신다.🫰

하나님은 그런 일을 하실 때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신다. 그분은 어떤 일에서도 전과 동일하게 행동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그 어떤 수단이나 방법에도 국한되지 않으시며, 그분이 보시기에 좋은 대로 행동하신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몇 가지 상황들을 비교하면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욥이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던 태도를 버리고 자신을 혐오하게 된 것은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는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인식 때문이었다(욥 42:1-6). 이사야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돠"(사 6:5)라고 외쳤던 것은 여호와의 드높은 영광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기적의 능력을 목격한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고 외쳤다. 오순절에 모였던 이들은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이 찔렸다"(행 2:37).

다윗의 경우에 하나님은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시기 위해 선지자의 입을 빌어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어떤 이가 너무나 악한 일을 당했기에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누구라도 그런 극악한 일을 한 자를 비난할 수밖에 없는 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록 죄의 본성이 그것의 하수인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일지라도, 그것은 그에게서 옳고 그른 것에 대한 인식 자체를 빼앗아가지는 않는다. 어떤 이가 그 자신의 죄의 흉악성에 대해 무감각할때라도, 그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악을 식별할 수 있다.

그렇다. 많은 경우 자기 눈에 들보를 갖고 있는 자들은 그의 동료들의 눈 속에서 아주 쉽게 티끌을 찾아내는 경향이 있다(마 7:3). 나단이 그런 원리를 따라 말했던 비유는 효과가 있었다. 다윗은 자신의 악을 고백하는 데는 느렸지만 다른 이의 악을 비난하는 데는 아주 빨랐다.😟

나단이 말한 비유는 다윗의 감성과 양심을 자극했다. 우리아와 그의 아내의 상황은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삼하 12:3)를 갖고 있던 어느 가난한 사람의 모습을 통해 가슴 아프게 묘사된다. 그 양은 그에게 너무나 귀했기에 "그의 품에 누울" 정도였다.

그 가난한 사람에게 악을 행한 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은 부유한 자로 묘사된다. 이것은 그가 자기 이웃이 갖고 있던 유일한 양을 잡은 죄를 극대화시킨다. 그가 그런 죄를 지은 원인은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왔기 때문이다. 그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양을 잡은 것은 그 행인을 섬기기 위해서였다.

그에게 온 "행인"은 밧세바와 관련해 쉼 없이 움직이는 다윗의 육신, 즉 방황하는 생각과 두리번거리는 눈을 의미했다. 아, 사랑하는이여, 우리가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라"(고후 10:5).아멘!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그 과제의 일부는 우리의 생각을 단속하고 온당치 않은 상상을 물리치는 데 있다. 우리가 방황하는 생각들이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거나 악한 상상들이 우리 안에서 솟아오르지 못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들과 맞서고 그것들을 거부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일에 실패했다. 그는 그 "행인"을 맞아들였고, 그를 즐겁게 해 주었고, 그를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 그것도 자기의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것을 희생시켜 그렇게 했다(이 비유에서 양은 그의 이웃의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아, 사랑하는이여, 우리가 죄로 가득 찬 욕정에 빠지고, 악한 상상에 탐닉하고, 방황하는 생각들을 온당치 않은 것들로 부추길 때, 우리는 안타까운 타락을 위한 길을 놓고 있는 셈이다. 우리에게 "행인들"이 찾아올 것이다. 즉 우리의 마음이 요동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의 책임은 온당치 않은 것들로 그 행인들을 먹이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빌립보서 4장 8절 말씀을 숙고하라.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2 p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