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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194] 회개(사무엘하 12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194] 회개(사무엘하 12장)

En Hakkore 2024. 2. 28. 16:49

깨어나는 양심

이제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다윗의 양심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단이 하나님의 전통(箭筩)에서 꺼내 다윗의 병든 마음을 향해 쏘아 보낸 날카로운 화살이 그의 눈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자신이 처해 있는 무서운 상황을 직면할 수 있었다.

비록 그의 행위는 끔찍했지만, 그가 자신이 완전히 타락해서 하나님께 철저하게 버림을 받은 것은 아님을 보여 준 것은 바로 그때였다.

"다윗의 마음 안에 잠들어 있던 하나님의 은혜의 불꽃이 다시 점화되기 시작했다. 발뺌하려는 태도는 보이지 않았고 그의 죄책감이 온전하게 드러났다. 그렇기에 그는 선지자의 날카로운 비난에 대해 분개하거나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지극히 낮추고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라고 고백했다. 말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은 참된 회개의 언어였다. 참된 회개는 모든 죄를,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여호와의 권위와 영광에 대한 죄로 여기기 때문이다"(Thomas Scott).🤞

만약 우리가 성경의 어떤 주제와 관련해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부지런히 성경을 연구하고 그 각각의 구절들을 다른 구절들과 비교해 보아야 한다. 이 원리를 지키지 못하면 우리는 부적절하거나 일방적인 견해를 갖게 된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무엘서는 이때 다윗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났던 움직임과 관련해 아무것도 기록하고 있지 않다. 거기에는 그의 회개의 실제성과 깊이를 보여 줄 만한 것이 아무것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것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우리는 성경의 다른 곳, 특히 그의 회개의 시편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령께서는 그 시편들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이 다윗으로 하여금 그 시편들을 쓰게 했는지 알려 주신다. 그 시편들에는 신자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심적 경험들이 아주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거기에는 성도가 이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경험하는 온갖 마음상태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들어 있다.😊

성경의 이 책(시편-역주)이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그토록 사랑을 받아 온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내면의 역사가 그 안에 정확하게 서술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자신의 죄에 대한 혐오

당시 다윗의 마음 상태를 보여 주는 두 가지 중요한 시편들은 51편과 32편이다. 아마도 분명히 51편이 32편보다 먼저 쓰였을 것이다. 시편 51편에서 우리는 그 타락한 성도가 무서운 웅덩이와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발견한다.

시편 32편에서는 그가 다시 굳건한 토대 위에 서서 자신의 죄가 가려진 것 때문에 새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 두 가지 모두가 하나님이 나단의 손을 빌어 찌르신 작은 칼이 다윗의 양심을 관통했을 때, 그리고 그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확언이 향유(香油)처럼 그의 마음에 부어졌을 때 쓰인 것은 분명하다.

고통스럽게 얻어맞은 자의 열정적인 외침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메아리였다. 그것은 용서라는 자비로운 선물을 자기의 것으로 삼으려는 다윗의 믿음의 노력이었다. 용서를 구하는 기도의 토대와 유인(誘因)은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우리는 시편 51편에 첨부되어 있는 머리글(上記)이 "다윗의 시,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로 되어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펄전(Spurgeon)이 이 시편에 대한 서론에서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말한 바 있다.

"하나님의 메시지가 그의 잠들어 있던 양심을 일깨우고 그로 하여금 자신이 지은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했을 때 그는 이 시편을 썼다. 그는 육신에 탐닉하는 동안 시 쓰는 일을 잊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이 깨어났을 때 그는 다시 수금을 탔고, 탄식과 눈물로 반주 삼아 노래를 쏟아냈다."

다윗의 죄는 컸다. 그러나 그는 회개했고 회복되었다.👏 그의 고뇌의 깊이와 그의 회개의 실제성은 그 시편의 모든 구절들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쏟아놓으며 겸손하고 진실하게 그분의 자비를 구하는 회개하는 영혼의 슬픔과 갈망을 발견한다.

고통을 당하던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다윗의 회개의 눈물로 범벅이 된 이 시편으로부터 크고 황량한 사막에 처한 타락자들을 위한 길을 발견했는지는 오직 심판의 날에나 알려질 것이다.

"비록 이 시편이 용서와 회복을 위한 긴 부르짖음일지라도, 우리는 이 시편의 탄원들 안에서 어떤 순서와 경과를 식별할 수 있다. 그 순서란 어떤 마음 상태를 인위적으로 재생산하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회한 섞인 갈망의 감정이 터져 나오는 무의식적인 순서다.

그 시편에서는 모든 것이 '주의 인자'와 '주의 많은 긍휼'에 대한 호소로 시작된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 영향을 끼치는 유일한 탄원이다. 우리의 탄원의 동기와 방법은 그분의 사랑이다. 그분의 과거의 행동이야말로 그분의 미래의 행위를 위한 기준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그분의 연민은 우리의 모든 죄악의 총합보다 크다. 설령 그것이 우리의 머리털보다 많을지라도 그렇다. 하나님의 자비에 호소하면 회개하는 영혼은 온갖 모습의 악을 지닌 자신의 죄 너머를 바라보는 법을 배울 수 있다"(Alexander Maclaren).🤞

이 시편 기자가 자신을 얼마나 깊이 그리고 강하게 혐오했는지는 그가 자신의 죄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단어들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범죄"(transgression, 1, 3절)와 "죄악"(iniquity, 2절) "죄"(sin, 3절)에 대해 말한다(KJV, 한글 성경에서는 이 단어들이 혼용된다-역주).

어떤 이가 강력하게 지적했듯이,

"그는 자기가 지은 각각의 죄들 - 자신의 욕망, 기만, 배신, 살인 등 -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는 그 모든 죄들이 마치 고르곤(Gorgon, 머리털이 뱀들로 이루어진 그리스 신하에 나오는 괴물-역주)의 머리 위에 똬리를 틀고 있는 뱀떼처럼 서로 풀리지 않을 정도로 뒤엉켜 있는 것으로 여긴다. 죄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죄의 개별적인 행위들은 하나의 공통의 뿌리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마치 고여 있는 연못 위에 뜬 초록 식물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시편 51편에 실려 있는 중첩되는 동의어들을 통해 다윗이 자기가 저지른 일의 본질과 특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몇 가지 심원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첫째, 그것은 무엇보다도 "범죄"(transgression)였다 - 혹은 그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반역"(rebellion)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그것은 어떤 비인격적인 법에 대한 단순한 위반이 아니라, 한 백성이 그의 참된 왕에게 맞서서 일으킨 고의적인 반란이었다. 그것은 어떤 기준에 대한 반대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었다.

둘째, 그것은 다른 이를 부당하게 그리고 옳지 않게 다뤘던 "죄악(iniquity)-오용과 왜곡-이었다.

셋째, 그것은 "죄"(sin) 혹은 "과녁을 벗어남"(missing the mark) 이였다. 왜냐하면 모든 죄는 참된 목표)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든 우리 자신의 행복이든 한참 벗어난 큰 실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속의 피로밖에는 씻어낼 수 없는 오염과 오물이었다.

넷째, 그것은 "악"(evil 4절), 즉 가차 없이 정죄되어야 마땅한 악한 일이었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7절)라고 외치게 만드는 고통스러운 나병이었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2 p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