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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230] 속임수 중의 존귀(수 9:1-27)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230] 속임수 중의 존귀(수 9:1-27)

En Hakkore 2024. 8. 22. 21:14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수 9:15).

이는 여호수아에게는 명예로운 기록이 아니지만, 성령에 감동받은 역사가의 철저한 신빙성을 드러내 준다. 성경은 극히 유명한 인물들의 오점들을 기록하는 데에 편파성이 전혀 없다.👌

하나님의 충성된 종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대적하는 자들에게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스 4:3) 라고 답했는데, 여호수아 역시 기브온 주민들에게 그렇게 대답했어야 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지속적으로 증언하기 위해, 그분의 백성은 세상의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자들과 조약을 맺고 있다. 불경한 자들과 분리된 삶을 살도록 부르심 받은 성도의 증언을 망치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사탄의 큰 목표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탄이 승리하도록 성도 스스로 허용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빛이 어둠과 교제할 일이 어디 있는가?
거룩하신 하나님과 언약 관계 속에 있는 백성과 우상숭배자들 사이에 무슨 화합이 있는가? 전혀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바로 이 점과 관련해서 언제나 부지런히 경계하고, 그에 준하여 처신하며, 타협을 조장하는 사단의 간계를 불굴의 자세로 물리쳐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억하자. 그리스도인은 자기 속의 원수들과 절대로 화목해서는 안 되고, 끊임없이 그것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아멘 ✌️

청교도인 제임스 더함(James Durham)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영적인 활동들에서 무언가 은혜로운 상태에 이르는 것과 그런 상태를 유지하는 것 중에,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는 일과 화평을 이루고 난 후 그것을 지키는 일 중에 어느 쪽이 더 힘든지를 알기가 어렵다".

이러한 지적은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에서는 물론 하나님의 자녀들의 경험에서도 확증된다. 일반적인 경험으로는 무언가를 이루기보다는 이미 이룬 것을 없애기가 훨씬 더 쉽듯이, 영적인 일에서도 이루기보다는 없애기가 훨씬 더 쉬운 법이다. 시편 85편 8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대로 돌아가지 말지로다"(시 85:8).

이러한 교훈이 우리에게 얼마나 절실한지 모른다. 어린아이가 불에 손가락을 데이면 불을 무서워하게 되기 마련인데, 이와 마찬가지로 신자가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하는 어리석은 처신으로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그럴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배나 더 경계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성도가 자기에 대한 신뢰를 줄이고 여호와 앞에서 순전히 행하지 않고, 교만을 죽이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의의 길로 나아가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하도록 그가 지정하신 수단을 사용하는 데에 소홀히 하다가, 동일한 죄에 다시 빠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신자들에게 "다시 어리석은 대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라고 권면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그렇게 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그러나 그런 일에 대해 결코, 여지를 남기지 않고 분명하게 금하고 있다.

더 나아가, 바로 그 직전의 내용을 볼 때에도 그런 과실을 반복하는 것은 더욱 위중하다. 여호와께서 그분의 성도에게 은혜를 베푸사 "화평을 말씀" 하셨으면, 곧 그들의 범죄를 용서하셔서 그들의 양심을 가볍게 해 주셨으면, 감사의 마음이 가득하여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고 그분의 영을 근심하게 하는 모든 일 하나하나를 더욱 신중하게 회피하는 것이 마땅하다.

헨리(Henry)는 다음과 같이 올바로 지적한다.

"지나간 죄들을 씻는 것은 앞으로 범할 죄들를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막고 재갈을 물리는 것이다"👌

죄로부터 돌아서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화평을 말씀하심으로, 만일 우리가 그 죄들에게로 다시 돌아가면 화평이 우리에게서 물러간다는 뜻이 여기에 담겨 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화평을 귀하게 여기는 만큼, 그 화평을 깨뜨리는 요인들을 피하기 위해 부지런히 힘쓰게 될 것이다.

죄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며(요일 3:4),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을 향해서는 "범죄"(롬 5:17), 혹은 욕이요, 그 자신을 향해서는 어리석음. 혹은 우리의 유익에 반하고"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리는"(욘 2:8) 처사이다.

죄는 모두가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나 죄에 다시 빠지는 것은 배나 더 어리석은 일이다. 죄에 빠지는 부패한 성향이 우리에게 있으므로. 우리 모두가 위와 같은 경계를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한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경계를 늦추면 곧바로 우리를 과실에 빠뜨릴 태세를 갖추고 있을 만큼 죄가 교활하므로, 더욱 더 경계해야 마땅하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