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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228] 속임수 중의 존귀(수 9:1-27)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228] 속임수 중의 존귀(수 9:1-27)

En Hakkore 2024. 8. 14. 16:24

그 다음에 이어지는 권면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과연 우리에게 명철을 주셨으니 그것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 부지런히 그것을 배양하는 것도 우리의 임무이다. 그리고 그 명철에 예리하게 만드는 방법 중에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다.✍️

그러나 한편, 그것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타락으로 인해서 사람의 마음이 부패해졌고, 우리 속에 내주하는 죄로 인해서 그것이 어두워진 상태이므로, 아무리 잘해도 그것은 불완전한 안내자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거듭난 사람인 하나님의 선지자의 조언조차도 안전하지 못했다(삼하 7:2-5).

신자는 여전히 타락한 피조물로서, 자기 자신의 명철에(자기의 어리석은 생각과 거짓된 상상에) 기대며 그것을 이성의 신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그런 경향이 굴복하면 할수록 그만큼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 자신의 명철에 의지하게 되면 우리 스스로 온갖 어려움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의 결과를 고스란히 거두도록 허용하실 것이니 말이다.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이 사건에서 이스라엘은 바로 이런 점들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수 9:14).

모든 문제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이 잘못을 범했다. 여호와를 합당하게 높이지 못했고, 그분의 은혜로우신 뜻을 대제사장을 통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의 실패의 원인이 여기서 명확히 드러난다.

이 절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서로 뗄 수 없도록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였다"는 것은 그것들을 '먹어 보았다' 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 양식의 곰팡이가 끼어 있었으므로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다. 기브온 주민들의 말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들의 스스로 그 양식을 면밀히 조사했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근거하여 처신했고 자기들이 감각에 의존했다. 그들은 영적으로 행하지 않고 본능 본성적으로 행동한 것이다. 그들이 여호와의 종을 통해 그에게서 인도하심을 구하도록 그분의 말씀이 지정하고 있음에도, 그들은 다시 자기들 자신의 지혜를 신뢰했고. 자기들 자신의 판단에 의지했고, 따라서 하나님께 의뢰하는 일은 애초부터 배제되었다. 그들은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다😥

그렇게 했더라면 이 기브온 주민들의 양식을 그들 스스로 테스트해 볼 필요조차 없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했더라면 그 사람들에게서 속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이 일은 전적으로 그들 자신의 탓이었다. 이 일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온 이후 두 번째로 저지른 잘못이었고, 여호수아가 이 일에서 무죄할 수는 없었다.

첫 번째 잘못은 첫 번째 아이 성 공격 시에 일어났었다. 아이 성을 정탐하고 온 자들이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보고했었다.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수 7:3).

여리리 성에서 이룬 승리에 우쭐해지고 자기를 신뢰하는 정서에 휩쓸려, 그들은 여리고 성 함락이 그들의 전략의 탁월함이나 군대의 용맹함 때문이 아니었고 오직 이적을 일으키신 여호와의 권능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자기들 자신이 무적이라고 생각했고, 그러니 이제 남은 가나안의 나머지 성들을 함락시키는 것은 그저 단순한 임무일 뿐이라는 식으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들의 군대의 일부만으로도 아이 성을("만 이천 명"의 병력이 그들에게 있었음에도) 충분히 함락시킬 수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하여 어리석게도 그들은 지도자에게 (여호와께 인도하심을 구하지 않고) 자기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를 구한 것이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이,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육신적인 조치에 타격을 가하셨고 그들의 교만한 마음을 낮추셨다. 원수들 앞에서 이스라엘이 수치를 당했고. 놀라서 도망했으며, 온 회중이 완전히 충격에 휩싸였다(수 7:4-6).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편에서 또 다시 실패하게 된다면, 그 이전의 실패와는 양상도 전혀 다르고 원인도 매우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눈을 크게 떠서 첫 번째 패배에 대한 원인을 잘 인지한 다음이니,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경계를 배가시킬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의 본성은 실패에서 유익한 교훈을 얻는데 얼마나 더딘지 모른다. 믿는 자들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조차도 첫 번째의 과오를 되풀이했다.

임시로 거주하려고 애굽에 내려간 일도 잘못이었는데, 거기서 사라와의 관계에 대해 부인하는 더 심각한 과오를 저질렀고, 그로 인해서 바로에게 수치를 당했음에도(창 12:10-20), 그랄에 임시로 거주하는 동안 똑같은 잘못을 다시 저질렀다(창 20:1-2).

베드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비겁한 마음이 들어 그리스도를 부인했는데, 훗날 다시 안디옥에서 동일한 연약함을 굴복하고 말았다. 예루살렘으로부터 특정한 사람들이 왔을 때에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이방인 신자들과 스스로 교제를 중단했다(갈 2:12). 두 경우 모두 사람을 두려워하여 그런 올무에 빠진 것이요(잠 20:25).

이런 올무에 빠지는 것은 우리가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은 결과"이다. 지금 우리가 살피고 있는 이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여호수아가 그 이전에 과오에 다시 빠진 것이다. 아이 성에서 과오를 범한 이후, 이스라엘과 그들의 지도자는 그 다음 바로 다음에 이어진 테스트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여호와께 묻지 않고, 자기들의 "상식" 에 의지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과 여호수아 모두 기브온 주민들의 그럴듯한 이야기에 속아 넘어갔고, 그들이 차림과 그들이 보여준 음식물의 상태를 곧이 믿고서 그릇된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기록된 것은 우리를 교훈하고자 함이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롬15:4).✍️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491

🍇 사무엘하 7장 2-5절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