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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209] 아이성 정복(수 8:1-35)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209] 아이성 정복(수 8:1-35)

En Hakkore 2024. 8. 13. 21:3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넘겨 주리라 여호수아가 그의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그 성읍을 가르키니"(수 8:18).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후속적인 말씀을 기다려 왔다. 여리고에서도 그랬으니, 아이 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성을 함락시키고 멸하는 과정의 매 단계마다 여호와께로부터 명령을 받아서 진행해야 했던 것이다. 모세도 그가 행하는 모든 일마다 그렇게 했다. 사도들도 그랬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종은 무슨 일이든 반드시 하나님의 인준을 받고 행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 여기서 여호수아의 손이 가장 먼저 아이성을 가리켰다는 사실이 매우 귀하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분명하지 않는가?

여호수아의 원형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손을 들으시면, 그때가 바로 우리가 행동을 취할 최적기인 것이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언제 그의 손을 들어야 할지를 알려 주실 필요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매복하고 있던 군사들로 하여금 아이 성의 사람들이 성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서 신속하게 성 안으로 진군하도록 하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그분의 종을 실망시키지 않으셨고, 결정적인 순간에 명령의 말씀을 주셨다.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그 행동은 매복해 있던 사람들에게 신호였을뿐 아니라, 26절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완전한 승리를 얻기까지 모든 작전을 주도하는 것이었다. 이제 여호수아의 승리의 시각이 가까이 오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아이 성을 정복하게 되어 있었고, 여호수아가 빼든 단창이 그 상징이었다. 이것 역시 우리의 복되신 구주 예수님의 그림자였다.

22절과 24절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대로,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을 통틀어 그의 군대에게 명령을 하달하는 뛰어난 위치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 점에서 그는 높으신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모형이었다.

그리스도께서 베다니에서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계셨던 것처럼, 그는 아이 성 싸움 바로 전날 밤 백성들과 함께 유숙했다(9절). 그리고 우리 주님이 겟세마네와 유대인과 로마인의 재판 중에서 시간을 보내셨듯이, 여호수아는 그 다음 날 밤에는 골짜기에 홀로 있었다 (13절). 이는 깊은 낮아짐의 상징이었다.(사 40:4; 눅 1:52).

그리고 이어서 마치 매를 맞은 것처럼, 원수 앞에서 도망했는데(15절),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도 마치 패배하신 모습으로 원수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다. 그런데 이제 승리의 하나님을 확신하고 있다(18절).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그분의 발등상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듯이 말이다.

이제 이 부분을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여호수아 8장에 나타나는 예표적인 가르침을 면밀히 상고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본문을 살피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 내용에 대한 실천적으로 적용할 문제들도 언급했고, 또한 여호수아가 우리 주님을 예표하는 몇 가지 부분들에 대해서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은 질문을 드려야겠다.

아이성의 함락하고 멸망시킨 일이 이 책에 구체적인 주제에 무엇을 보태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의 영적 전투에 대해서 우리가 얻어야 할 주요 교훈들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하기는 쉬워도 답변하기는 어렵다. 앞의 여호수아 3장과 4장을 살펴볼 때보다도 이 부분을 살피면서 더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예상되던 것이었다.

첫째, 이스라엘은 여기서 하나님의 차선만을 누릴 뿐이며, 그런 상황에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상당 부분 감추어질 수밖에 없고. 인간의 어리석은 처신이, 말하자면, 뿌연 안개처럼, 시야를 가려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인간적인 면이 더욱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갓난아기는 안고 가지만, 걸음마를 배워야 할 시기가 곧 오게 된다. 마찬가지로 성도도 자기가 받은 은혜들을 계발하고 정욕거리들을 굴복시켜야 한다.

요단강을 건널 때와 여리고성을 함락시킬 때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이적들을 일으키시고 모든 일을 친히 다 행하셨다. 그러나 아이 성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더 많은 부분이 요구되었다. 영적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중생은 은혜의 기적이며, 우리는 그 일에서 전적으로 수동적이었다. 그러나 은혜 안에서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기능들이 제대로 발휘되어야만 한다. "어린 양"은 그리스도께서 가슴에 안으시지만(사 40:11), "양"은 그분을 따라가야 한다(요 10:27).

회심한 직후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여 신자가 대개 사탄의 공격과 그 자신의 내적인 부패한 요인들의 부추김으로부터 한동안 평안을 경험한다.

그러나 금방 뱀의 적대감을 의식하고 그리하여 자기의 마음 속에서 강력한 원수들의 활동을 고통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믿음의 싸움은 더욱 맹렬해지고, 때로는 그 싸움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맛보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의 선을 더욱 증진케 하시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음을 분별할 수 있다.

우리의 능동적인 행함이 동시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모든 일을 다 해 주신다면, 그래서 우리가 오로지 승리만을 항상 경험한다면, 우리는 곧바로 교만해지며 자신이 전부인 줄 알게 될 것이다. 여리고 전투 이후에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채찍들과 그분의 교훈들을 통하여 과거의 패배를 승리로 바꾸는 법을 - 하나님이 지정하시는 수단을 사용하므로 또한 그 일에 하나님이 복 주심으로 - 배우게 된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