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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207] 아이성 정복(수 8:1-35)
En Hakkore 2024. 7. 20. 12:03"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들 앞에서 거짓으로 패한 척하여 광야길로 도망하매"(수 8:15).
여기에는 그저 역사적인 관심사를 넘어서고, 심지어 우리 마음에 실질적인 교훈을 주기까지 하는 무언가가 있다. 언뜻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고, 전혀 어울리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때의 여호수아의 처신이(바로 그 다음의 결말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부요하신 자로되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사 그분의 가난하심과 비천함과 고난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부유하게 되게 하신 그분을 그림자로 보여 주는 점이 명백히 놀랍게 드러나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이 전략에서 행한 일은 그의 원형이신 우리 주 예수님께 적용할 수 있다. 여호수아는 자기를 굽히고, 마치 자기가 정복 당하는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정복했는데, 이처럼 우리 주 예수님도 머리를 숙이고 영이 떠나가실 때 마치 죽음이 그에게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였고, 마치 그와 그의 모든 관심사가 망가지고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부활로써 다시금 공격을 개시하셨고, 죽음의 권세를 완전히 패배시키셨다. 뱀으로 하여금 자신의 팔꿈치를 상하게 하도록 허용하심으로써 그 뱀의 머리를 치신 것이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전략인가!"(헨리 Henry).
하나님의 길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른다. 그는 하늘의 해를 세우셨을뿐 아니라 어린양에게 하늘의 특징을 부여하셨고, 열매 맺는 포도를 그리스도의 표상으로 지정하실뿐 아니라, 구약의 사건들을 일으키사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역을 미리 그림자로 드러내게 하셨으니 말이다!
"그 성읍에 있는 모든 백성이 그들을 추격하려고 모여 여호수아를 추격하며 유인함을 받아 아이 성읍을 멀리 떠나니"(수 8:16).
이 일 역시 "여호와께로부터" 비롯된 일이니, 우리 눈에는 그저 놀랍게 보인다. 여기서도 여호수아의 책략에, 아니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명령에 순종하여 그대로 이행한 것에 대해 하나님이 베푸신 승리를 본다.
아이 성의 왕이 모든 병력을 이끌고 성 밖으로 나올뿐 아니라-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도망한다"라고 크게 함성을 지르며(6절) - 이스라엘이 도망하는 것처럼 보이자 전투에 가담하지 않았던 일반 백성들까지 불러서 함께 추격하게 했으며, 그리하여 매복해 있던 삼만 명의 군대의 임무가 훨씬 더 손 쉬워졌다.
하나님이 이 계획에 복을 주지 않으셨다면, 삼만 명이나 되는 군대가 발각되지 않은 채 숨어 있을 수가 없었으리라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하다. 창세기 30:37-43에서 야곱이 쓴 방법과 마찬가지로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의 번영은 그들을 망하게 하고 그들의 패망은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다"(헨리 Henry).
전에 하나님이 아이 성의 왕을 사용하사 이스라엘을 추격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 왕과 그의 백성은 그런 승리의 우쭐해지고 만 것이다. 여기서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그 엄밀한 표현을 주목하기 바란다.
아이 성의 거민들이 "유인함을 받아 아이 성읍을 멀리 떠나니" 이 문구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세상에서 행하시는 또 다른 은밀한 역사하심을 제시해 준다.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행하시는 억지력에 주목한 바 있는데, 여기서는 그분의 강제력(impelling influence)이 나타난다.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백성에게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렘 31:3)라고 말씀하시지만, 그러나 물리적인 완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본성적인 적대감을 이기고 죄의 세력으로부터 죄의 권세로부터 의지를 자유케 자유하게 하시는 도덕적인 설복을 통해 그렇게 하신 것이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호 11:4).
곧 야생 짐승들에게 하듯 외형적인 압력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가진 피조물들의 지정의에 영향을 주기 위해 적합한 대로 말로 설득하고, 부드럽게 감동을 주고, 동기화 의무를 깨닫게 함으로써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성령의 초자연적인 권능의 적용으로 말미암는 효력이기도 하다. 죄에 종노릇하며 사탄에게 사로잡힌 자들을 자유하게 하는 데는 이와 같은 하나님이 이끄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주 예수님은 이를 명확히 선언하신 바 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 6:44).
이는 자연인의 교만한 마음에게는 너무도 역겨운 진리이므로, 그리스도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요 6:63, 66).
진리의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끄시는 능력을 알릴뿐 아니라, 택함 받지 못한 자들에 대해서도 그가 역사하심을 계시한다. 그러나 그들의 경우에는 하나님이 매우 다른 이유들과 유인거리들을 사용하시는 것은 물론이다.
"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출 14:4)
애굽 왕으로 하여금 여호와의 백성을 홍해까지 추격하도록 하셨다. 그런 가나안의 다른 왕들에게도 똑같이 역사하셨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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