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John934》 본문

강해시리즈/요한복음 강해 (An Exposition of John)

《John934》

En Hakkore 2024. 8. 10. 22:04

그리스도와 베드로(요 21:15-25)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21:17).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말씀의 힘을 보게 된다. 이것은 실로 요한복음 13장의 귀결이라고 할수 있다. 베드로가 "근심하였다"라는 것은 주님이 물음을 되풀이 하셨기 때문에 주님에 대해 마음이 상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세 번 거듭되었던 부인을 상기하였기 때문에 마음이 찔리도록 아팠으며 깊이 슬퍼하였다는 뜻이다. 곧  누가복음 22:62에서 볼 수 있듯이 그가 "심히 통곡했던" 것에 상응하는 것이다.

이 "근심하였다"는 말은 그의 완벽한 회개를 증거한다. 그렇지만 만일 주의 제자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살펴진 바 되고 그의 서글픈 변절을 기억하도록 불러일으켜진 것이 근심스러웠다면 주님 자신이 부인받으셔야 했던 것은 얼마나 더욱 근심스러운 일이었을까?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21:17).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변화시키는 효과를 보는 것은 참으로 복되다. 그는 이제 자신의 사랑이 다른 사람들의 사랑보다 더 탁월하다고 공언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어떠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허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는 마침내 자신의 애정조차도 공언하기를 사양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전지하심에 맡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주여 당신이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당신을 부인했을 때 사람들은 어떠한 사랑이나 애정의 표지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께서는 바로 저의 그 마음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모든 것을 보시는 당신의 눈에 의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이 이 제자를 위로하였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모든 것의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도 알고 계신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그의 가련한 종이 입술로 범죄했을지라도 그 마음에 있는 것을 보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다시 한 번 구세주의 절대적인 신성을 인정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제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노래하려는 자들을 책망하였던 것이다!

"그의 자기 판단은 완벽하다. 하나님의 눈 아래 살펴진바 되어 그는 자기 자신을 깨달았고 인정하였다.

다른 사람들보다 낫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그렇게 비워서, 그는 자신의 사랑의 자질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바람직한 단계에 이제 도달한 것이다.

연약하게 되어진 강한 사람은 이제 그의 형제를 강하게 하기에 적합하다. 그리고 베드로가 한 계단, 한 계단 겸손의 사다리를 내려옴에 따라 주님도 한 단계 한 단계 그가 수행하도록 정해진 일을 확증해 주시면서 그를 뒤따르신다" (Numerical Bible)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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