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John931》 본문
그리스도와 베드로(요 21: 15-25)
"그는 비천한 인간에게 그렇게도 필요한 실제적인 확신을 불러일으켜 주고 아울러 강하게 하셨다. 그에게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는 권면의 말씀이 주어지기 이전에 이미 그에 관한 모든 것을 알게 한 것
- 그를 위한 기도로써 - 은 그의 상처 입은 영혼에 진정 아름다운 향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정심 많은 주님은 이것으로만 만족하지 않으셨다. 그의 부활에 관한 첫 메시지는 특별히 '베드로에게'(막 16:7) 알려져야만 했다.
그래서 주님은 열두 제자에게 보이시기에 앞서 그, 곧 '게바'에게 먼저 나타나셨다(고전 15:5). 그리하여 그는 주님이 그들 모두 앞에 나타나셨을 때 움츠러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디베랴의 바닷가에서 일어났던 일에 관해 읽을 때 그 모든 일이 되어진 과정을 쉽게 알 수 있다. 바닷가에 서 계신 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듣자 그는 겉옷을 걸치고 주님을 뵙기 위해 성급히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이 확신으로 가득 찼을 이제야 비로소 그의 양심으로 해야만 하는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Numerical Bible).
구주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기시면서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13:7).
우리가 알거니와 이 깨끗하게 씻김은 그리스도와 "상관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써 행해져야 할 일이었다(13:8).
이것은 주님과 교제가 끊겨진, 더럽혀지고 있는 영혼을 회복시키는 일에 있어서 주님의 은혜로우신 역사에 대해 말해 준다. 즉, 그가 사용하신 수단으로 비유되어진 "물"은 곧 말씀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여, 주님이 발을 씻기셨던 그때에 베드로는 변절자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러한 구세주의(예시적인) 행동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요구를 그의 양심 깊숙이 깨닫게 되었으며, 말씀이 지니는 바 정결하게 하는 힘과 우리의 거룩한 제사장의 회복시켜 주시는 은혜를 터득하게 되었다.
21:9 말씀에서 우리는 사도 베드로가 바닷가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 맨 처음 보게된 것이 "숯불"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읽을 수 있으며, 그곳에서 베드로는 자신의 몸을 위해 "불을 쬐며" 옆의 그리스도의 원수들과 함께 서 있었다
그가 자신의 선생을 부인했던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이 디베랴 바닷가의 "숯불"이 얼마나 그의 양심을 찔렀겠는가! 무언의 설교, 그러나 더할 수 없이 힘 있는 설교!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에 관해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으셨으며 한 마디 말씀도 아니하셨다.
그러한 것은 불필요하였다. 그 다음 말씀에서, 구주께서 주신 음식을 나누고 있는 일곱 제자들에 대해 읽으면서 베드로에 관한 주님의 태도가 변하지 않았음을 보게 된다.♡
식사가 끝나자 주님은 시몬 베드로를 향하여 말씀하셨다. 주님은 바로 그고곳, "숯불" 옆에서 그외 이 대화를 시작하셨다. 이것은 사도 베드로로 하여금 그 자신을 심판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불"은 곧 심판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21:15).
주님이 어떻게 말씀을 시작하셨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 보자. 질책의 말씀은 물론 아니었으며 또한 비난의 말씀도 아니었다. 더욱 "왜 너는 나를 부인하였느냐"라고 묻지 않으셨다. 오히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주님이 그를 "베드로야" 라고 부르지 않으시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라고 부르셨음을 주목하여 보라. 이것은 무의미한 호칭이 아니다.
"시몬"은 그의 본 이름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주님이 그에게 주었던 새로운 이름과 대조된다.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반석]라)"(1:42).
주님이 그의 제자에게 말씀을 시작하신 방식은 의도적으로 "베드로"라는 이름에 의문을 불러 일으키신 것이었다. 누가복음 23:31에서는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주목해 보라.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리스도께서 여기에서 그로 하여금 자연인으로 지냈던 그의 과거를 상기시키고자 하셨다.
주님이 "바요나 시몬"으로 그에게 말씀하신 유일한 또 다른 경우는 마태복음 16:17에서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그렇지만 또한 주님이 곧 바로 다음과 같이 덧붙여 말씀하셨음에 주의해야 한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따라서 주님이 요한복음 21:15에서 그의 제자에게 하신 이 처음 말씀은 그로 하여금 그의 영광스러운 그때의 고백을 날카롭게 기억하게끔 의도되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로 하여금 자신이 후에 하였던 끔찍한 부인을 좀 더 민감하게 느끼게 했을 것이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물음은 그리스도께서 제자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하셨던 것보다 더욱 마음을 탐색하게 하는 것이다. 그는 베드로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시켜 주려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완벽한 치료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그는 말 그대로 그 상처를 새로이 다시 열어 젖히셨다. 구세주는 그로 하여금 그의 변절의 교훈을 잊게 하려는 것도, 또한 용서로써 그의 죄를 잊게 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주님은 그가 주님을 부인했던 저 서글픈 추억으로 세심하게 그를 다시 되돌아가게 하신다. 아니 오히려 각성시키는 질문에 의해서 그 사건을 제자의 양심 앞에 가져다 놓으신다.
베드로는 일찍이 이렇게 장담했었다.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충성심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제자들을 능가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기뻐하였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제 물으셨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즉 이 사도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