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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319]

En Hakkore 2024. 8. 4. 11:24

참된 신앙고백 6(마 7:21-27)

그러면 '집' 이란 우선은 어떤 사람이 말한 신앙고백을 뜻하는 것이라고 보아도 좋겠다. 그런데 그것은 시험하는 날에 증거로서 제시될 것이다.

혹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집이란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을 하도록 만든 그의 성품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성품' 이란 그의 믿음, 감정, 사랑 그리고 활동적인 습관 등 그를 이루고 있는 총체적인 골격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진리에 대한 믿음으로써 유일하게 주추를 놓았으므로 그 위에 자기의 사고와 감정 그리고 의지의 건물을 세운다. 그는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따라 형성될 것이다(롬 6:17).

그는 자기 자신의 현세적인 욕망에 의해 조정되지 않으며, 동료의 견해나 모범에 의해서도 아니고 그리스도의 견고하고 권위 있는 계율에 의해 통제된다. 따라서 그는 "영생의 소망"(딛 1:2)을 간직한다. 그리고 그것은 "은혜로 주신 좋은 소망"이다(살후 2:16).

왜냐하면 그것은 믿을 만한 주추에 기초를 둔 것, 즉 주님의 계율과 약속에 근거를 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그 계율을 붙잡고 실천으로 옮겼으며, 그 약속을 믿음과 합하여 자기 자신의 것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런 소망은 시험의 기간에 '견고하고 확고한 것'으로 입증될 것이다.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온 바에 의하면 모든 해석은 '행하다'라는 말을 중심으로 고찰되며, 그 말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보인다. 즉 그 말은 이 구절의 열쇠가 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중심적인 주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실천적으로 따르는 것이 되겠다. 하나님께서 순종에 부여한 중요성과 가치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라는 구절에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따르는 것은 어떤 외적인 종교의식보다도, 또는 세상에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그의 대의가 이루어 지도록 지극히 관대하게 기부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해드린다.♡

토머스 스코트는 레위인의 제사에 대하여 적절하게 사용하였다. 즉 그것들의 가치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해주신 약속에 의해서 살아나는 것이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회개하고 믿고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바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제사들은 받아들여지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경건하게 지내는 대신에 그것들을 바친 것이라면, 혹은 목적을 소홀히 한 것을 보상하기 위하여 제사의 수단을 사용하였으면서도 그것이 상 받을 만한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 제물이 아무리 값 비싸도 많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주 싫어하셨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께서도 마찬가지로 순종에 대하여 계속하여 강조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청중들에게 말씀하고 계셨을 때 한 사람이 말하기를,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와 이야기를 원하며 밖에 서 있다고 알려오자 그리스도께서는 손으로 '그의 제자들' 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마 12:49-50).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영적으로 그에게 가장 가깝고 가장 사랑스런 사람이 그의 '제자들' 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들이 그의 제자들이라는 말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어떤 여자가 그에게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라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눅 11:27, 28).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시는 사람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다. 즉 그것을 가장 귀한 신앙고백으로 간직하는 사람, 그것을 생각으로 자주 묵상하는 사람, 그리고 생활 속에서 그것을 실천의 규칙으로 삼는 사람이다.♡

양심적인 사람들은 그들의 순종이 대단히 불완전하고 결함이 많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바로 이 점에서 괴로워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두려움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며,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을 통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고 의미하지 않는 바는 무엇인지를 밝히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 주님의 말씀은 그의 제자들이 영구적이고 흠 없이 그의 계율을 이행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들이 중생했어도 그들에게서 현세적인 본성을 없애지 아니하셨으며, 또한 그들이 죄 없는 순종을 할 수 있을 만큼 그 정도로는 이 세상에서 그들에게 그의 은혜를 허락하지 아니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좋다고 생각하셨더라면 이 두 가지 은혜를 다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본래적으로 허락된 의 보다는 전가된 의를 높이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율법이 전체적으로 요구하는 순종을 전적으로 바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단 하나의 명령조차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가 이행하는 모든 의무와 나아가 우리가 바치는 최상의 예배행위라 할지라도 죄로 더럽혀지기 때문이다.

지극히 거룩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타락으로 인하여 본연의 순결을 잃고 있으며, 탐욕의 세력이 그들을 바라고 추구하는 완전한 거룩함을 해치려고 대적하며 활동한다(롬 7:18-21; 갈 5:17).

Arthur W. Pink 산상수훈 p561

ps.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롬 7:18-21).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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