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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314]

En Hakkore 2024. 8. 4. 11:22

참된 신앙고백 5(마 7:21-27)

유명한 스코틀랜드 주석가 존 브라운은 우리 주님이 사용하신 '그러므로' 라는 말의 의미앞에 나온 구절과 뒤에 나온 것 사이를 관련지어서 아주 분명하게 설명하였다.

"분명히 그리스도를 '주여 주여' 라고 부르는 자마다 모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은 실행하는 자라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 하더라도 불법을 행한 자들에게는 그의 심판을 내려 그들의 최후의 상태를 선포하심으로써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즉 '나에게서 떠나라 내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그러므로 이 말씀 뒤에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요 그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니라' 라는 말씀이 뒤따라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자는 영혼의 구원과 영원한 행복을 얻고, 후자는 그것들을 잃을 것이다."

매튜 헨리도 또한 이렇게 지적하였다.

"이 구절의 의도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가르쳐 준다. 즉 우리의 영혼을 구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확실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주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의 명령을 무시하면서도 구원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다고 생각하는 자는 스스로 치명적인 미혹에 빠진 것이다.

마태복음 7:24-27은 많은 점에서 25:1-12의 말씀과 비슷하다. 이 구절들은 둘다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각각의 경우에 있어서 신앙고백자들은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라는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각각의 경우에 있어서 이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점과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앞 구절에서는 둘 다 건축가로 비유되며 각각은 집을 짓는다. 뒤의 구절에서는 둘 다 '처녀' 라는 용어로 비유되며 각각은 손에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다.

각각의 경우에 있어서 후자는 증거를 제시할 때 결핍된 것을 발견하게 되고 회복할 수 없는 재난에 부딪친다. 즉 앞 구절에서는 폭풍이 몰아칠 때 어리석은 자의 집은 무너지고, 뒤의 구절에서는 신랑이 도착했을 때 어리석은 자의 면전에는 문이 닫혀져 있게 된다.

각각의 경우에 있어서 두 부류 간의 차이점은 외견상으로는 아무것도 없으나 보이지 않는 곳에 그 차이점이 있다. 즉 앞 구절에서는 '기초'에 결함이 있고, 뒤의 구절에서는  그들의 '등'에 기름이 없었다.

우리는 이 두 구절들 사이의 일치점을 지적하기 위해서, 그리고 뒤의 구절이 앞 구절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또한 그 해석을 규정한데 있어서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것들을 비교해 보았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지혜롭다고 일컬어지는 자들, 즉 "나의 말을 듣고 그 말을 이해하는 자"  또는 "나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자" 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충분히 주목해야 한다. 오히려 그가 말씀하신 바로 그것은 그보다는 훨씬 더 의미 깊은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그의 계율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아주 많다. 같은 방식으로, 인도에는 부처를 믿는 자들이 아주 많고, 중국에는 공자를, 아프리카에는 마호메트를 믿는 자들이 수백만 명에 달하며, 기독교 세계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그들에 관한 모든 것이 다 좋으며 죽더라도 천국에 가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땅 위에는 그들을 깨우쳐 줄 사람이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오늘날과 같은 배교의 시대에 있어서 대단히 많은 설교자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란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를 그들의 개인적인 구주로 받아들이는 일이 전부라고 가르치심으로써 미혹된 자들의 수를 더욱 증가시키고 있다.

그들은 '믿으라' 는 말을 담고 있는 요한복음 3:16과 사도행전 16:31같은 구절을 인용한다. 그러나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으며 자기를 부인하고 복종하라고 강조하고 있는 많은 구절에 대해서는 떳떳치  못하게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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