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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315]

En Hakkore 2024. 8. 4. 11:22

참된 신앙고백 5(마 7:21-27)

예를 들면, 우리는 유대교의 의식 준수나 기독교의 세례와 성찬식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들을 의롭게 하는 데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올바르게 보여주고자 하는 자들이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갈 6:15)라는 구절을 매우 자주 인용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그다지 자주 인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6)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믿음이란, 그것을 얻기  위해서 행동하는 합법적인 동기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으로부터 얻어진다고 주장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할례 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고전 7:19)라는 이 구절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고 있는지 염려해야 한다는 것, 즉 우리의 행동을 그의 뜻에 복종시켜야 한다는 것은 애써 표면에 나타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편협성은 지극히 비난받을 만한 일이다.

우리는 이 세 구절을 나란히 놓고 고찰함으로써 완전하고 균형 잡힌 견해를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거듭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와 생생하게 결합된 것은 아니다.♡

즉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을 가지지 못했다면 우리는 거듭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증거를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지니지 못한 것이다.

강단에서 그렇게 부정직한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을 때 청중석에 앉아 있는 자들 사이에도 그만큼 많은 부정직함이 있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는 때때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회개하지 않는 마음으로는 아무도 그를 '불러' 구원에 이르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줄 만큼 충실한 사람이 과연 누가 있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다"(히 5:9)는 말씀을 그들에게 상기시켜 줄 사람은 더구나 찾아볼 수가 없을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대단히 많은 목사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설교할 때, 하나님의 위안을 주는 약속에 대해서는 커다랗게 강조하면서, 그의 거룩한 요구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또한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3, 14)라고 덧붙이지는 않는 어떤 부류의 칼빈주의자들이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에 대하여 유창하게 말을 잘하는 자는 참으로 옳으나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다"(요일 2:3, 4)는 말씀을 상기하는 자는 아주 드물다.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구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실제적인 경건함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계속하여 주장하신다. 그는 그의 계율에 유의하거나 무시하는 일에 대해서, 튼튼한 기초 위에 집을 짓는 것이라든가 또는 가치 없는 기초 위에 집을 짓는 것이라고 비유하신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시험하는 날에 우리의 수고를 증명해 줄 폭풍에다 비유하셨다. 그가 명령한 것을 실제로 행한 자들만이 즉, 그의 율법에 진실로 복종한 자들만이 그 시험을 견디어 낼 것이다.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율법은 칭송하면서도 그 계율에 개인적으로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위기가 닥쳐오면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님께서는 이 설교에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말씀하셨던 내용을 강조하셨다.

그가 가르치신 실제적인 의를 칭송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즉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인 성품과 행동으로 그것을 구현하고 표현해야 한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진리를 실천적으로 믿는 것인데, 그것은 우리가 전심으로 그의 권위에 복종함으로써 이루어진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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