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산상수훈 297]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297]

En Hakkore 2024. 8. 3. 11:35

참된 신앙고백 2(마 7:21-27)

3. 믿음

우리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하면서"(사 48:1, 2) "성실치 아니하고 의로움이 없는"(1,2절) 자들에 대해 읽어보게 된다. 이는 그들이 완악하며 그 목이 '무쇠'와 같기 때문이다.

의롭다 여김을 받는 자와 아주 유사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 스스로 그 믿음이 하나님의 선택된 자의 믿음과 똑같으리라 여기며 그리스도인조차도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그런 믿음의 소유자가 있다.

가령 마술사 시몬은 "믿고"(행 8:13), 빌립과 그 지방 교회가 그들의 공동체와 특권에로 그를 받아들였을 정도로 그렇게 믿음을 고백하였다. 바위 위에 씨앗을 뿌림을 받은 자들도 "잠깐 믿었으며"(눅 8:13), 그에 대한 설명에 따르면, 뿌리가 없다는 것 외에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아무런 차이점이 없다.

즉, 이는 드러나는 차이점이 아니라 밑바닥에 놓여 있는 차이점이다. 거듭나지 않은 자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유대인들도 성경이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음을 의심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였다. 아그립바는 선지자들의 말이 진실임을 믿었으며 의문 없이 그들의 증언을 받아들였다(행 26:26, 27).

그들은 그리스도를 그들 자신의 주로 삼으며 자신의 주로서 그를 경배하는 믿음을 가질 수도 있다(마 7:21). 그들은 강한 확증을 주는 믿음을 가지는 것조차 가능하다. 그리스도를 적대한 자들도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사탄의 종이 아님을 전적으로 확신하고 있었다(요 8:33, 34).

이와 같은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에 미치지 못함은 어떠한 점에서인가? 그러한 믿음의 어디에 결함이 있는 것인가? 그것은 단지 성경의 문자에 대한 지적인 동의에 지나지 않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도록(엡 3:17) "마음으로"(롬 10:10) 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이 역사적 저술을 읽고 신뢰할 수는 있지만 그것에 의해 어떠한 영적인 결실도 거둘 수 없는 것과 같다. 그것은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다(약 2:17). 왜냐하면 다른 은혜들이 함께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그와 동반되는 사랑, 온유함, 거룩함, 인내 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러한 믿음은 그리스도 전체를 받아들이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 믿음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서 맞아들이기는 할지라도 그가 왕으로서 자신들을 다스리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와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은 그리스도의 용서는 바라지만 그의 왕권은 원하지 않으며, 그의 평화는 갈망하면서도 그의 멍에는 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을 지옥으로부터 구해주는 그리스도는 받아들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모든 죄를 그들의 성전에서 몰아내고 거룩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는 맞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제자로서의 신분에 대한 그리스도의 조건, 곧 자아를 부정하며 십자가를 짊어지고 그리스도께서 이끄시는 곳에는 어디든지 따라가야 하는 조건에 주의를 기울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러한 조건들을 가혹하고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형식주의자 내지 헛된 신앙고백자의 믿음은 생명이 없으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이 말씀이 기록된 장에서 사도는 다음 사항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로, 그저 말뿐인 자선의 무익함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형제에게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고 명하면서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지 않고 좋은 말로만 대접하는 것은 잔혹한 위선이다(15, 16절).

마찬가지로 만일 우리가 거룩한 분과 심판의 날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경건치 않게 살고 있다면 그러한 믿음 역시 놀림감이다(17절).

둘째로, 그와 같은 믿음은 귀신들보다도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귀신들도 "믿고 떨기" 때문이다(19절). 그런 반면에 헛된 신앙고백자들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셋째로, 그러한 믿음은 모든 믿는 자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이 소유하고 연단받았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전적인 복종을 표했다(21-24절).

마음을 깨끗하게 하지 않는 믿음(행 15:9). 사랑으로 역사하지 않으며(갈 5:6). 이기지 못하는 믿음(요일 5:4),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믿음은 어떠한 사람도 하늘나라로 인도되지 않을 것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522

'강해시리즈 > 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상수훈 299]  (0) 2024.08.03
[산상수훈 298]  (0) 2024.08.03
[산상수훈 296]  (0) 2024.08.03
[산상수훈 295]  (0) 2024.08.03
[산상수훈 294]  (0) 2024.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