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산상수훈 299]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299]

En Hakkore 2024. 8. 3. 11:36

참된 신앙고백 3(마 7:21-27)

하나님의 모든 말씀 가운데서 마태복음 7:21-23까지의 말씀보다 더 준엄한 구절은 드물다. 이는 근실한 신자로 하여금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성취하도록 권유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이 구절들에서 주님은, 단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들과 어떠한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그리고 또한 단순히 그들이 기독교의 원칙과 의식을 외견상으로 준수하고 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그렇게 간주되는 이들이 있음을 알려주시며, 그렇지만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 이라고 힐책하심을 깨닫게 하신다.♡

그들은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굳게 확신할 정도로 그렇게 주제넘은 자들이다. 그렇다. 그들은 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심판관께서 문을 닫으실 때에 심판대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청원하면서, 그리고 자신들의 의의 영원한 행복에서 제외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듯이 주장하면서 그에게 불평하고 있는 것으로 본문 말씀에서 표현되었다.

따라서 이 말씀은 그들이 자신들은 하나님의 인준받은 자들이며 다가올 진노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온전한 확신을 가지고 살다가 죽었음을 분명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같이 치명적으로 잘못된 생각을 비교적 소수의 사람들만이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본문에서 자신들의 구원에 대해 절대적인 확인을 가지고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으로부터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는 저 무서운 말씀을 듣게 될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명백한 암시를 주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열심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일반적인 답변은 다음과 같다.

즉 인간의 마음의 미혹됨, 그리고 거기에다 사탄의 궤변이 덧붙여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이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일반화 이상의 어떤 것을 필요로 한다.

사려 깊은 사람은 어떤 위험한 질병이 공동사회를 위협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 그 병의 성격과 징후, 그리고 특히 그에 대한 예방법과 스스로를 보호하는 최선책에 관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배우기를 원한다.

만일 우리가 육체적인 질병에 대해 우리 자신을 지키는데 있어서 수고나 주의를 아무리 기울여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미혹된 생각을 하게 하는 근거를 지적해 내고, 그 비참한 실수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하고자 한다.

1. 무지

앞 장에서 우리는 성경의 문자를 단지 지적으로 아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함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여 설명했었다. 하지만 그 사실로부터 진리에 대한 관념적인 지식은 구원에 이르는 지식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더군다나 나태함에 대한 용기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종종 영혼들과 만나기를 기뻐하시는 것은 수단들을 통해서이며, 그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비추어주는 그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동안이다.♡

성경은 무지나 나태함에 대해 상급을 주지 않는다. 만일 그러한 지식이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지 않는다면 지식을 얻으려는 수고는 어떠한 목적을 갖는 자신인지 반문하지 말고 그보다는 다음과 같이 자기 자신에게 말해보라:

만일 내가 바로 그 지식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다면 나는 천국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우리가 앞 장에서 진리에 관한 관념적인 지식에 대하여 다룸에 있어 얻은 것은 무지의 상태에서 안락하게 지내는 대신 오히려 두려움과 떨림으로 거기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도 많은 지식이 구원을 보장할 수 없다면 그가 소유하고 있는 것조차 나는 결여하고 있을 때, 나의 처지는 너무도 나쁜 것이다.

만일 바라다 보일 만큼 왕국에 가까이 나아온 자들이 들어갈 수가 없다면 거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채로 만족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무지한 자는 바로 그 그늘안에 있을 정도로 지옥에 너무도 가까이 있다. "흑암...과 사망의"은 성경에서 함께 연합되어 있다(마 4:16). 무지는 영적인 어둠이며 곧 영원한 사망의 그늘이다.

영적인 무지에 깊이 빠져 있는 자와 지옥 그 자체 사이는 단지 종이 한 장의 차이일 뿐이다. 무지는 내적 어둠으로, 말하자면 지옥 그 자체와 이웃해 있기 때문에 지옥은 "바깥 어두운 데"(마 8:12)라고 불린다.

그것은 참으로 서글픈 상태이다. 만일 그 훌륭한 열매를 맛볼 정도로 가나안에 가까이 이르렀던 자들이 광야에 떨어져 결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면, 애굽의 흑암에서 움직이기조차 거부한 자들은 어떻게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어쩌면 멸망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적인 것에 대하여 완전히 무지한 사람은 확실히 멸망받는다.♡

하나님께 "이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라고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그들을 지으신 이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며"(사 27:11)라고 덧붙이셨다. "모르는 것이 약이요, 어리석음이 곧 지혜라"는 말이 이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526

'강해시리즈 > 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상수훈 301]  (0) 2024.08.03
[산상수훈 300]  (0) 2024.08.03
[산상수훈 298]  (0) 2024.08.03
[산상수훈 297]  (0) 2024.08.03
[산상수훈 296]  (0) 2024.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