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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295]

En Hakkore 2024. 8. 3. 11:34

참된 신앙고백 2(마 7:21-27)

이제 다음 질문에 대답해 보기로 하자. 즉, 이들 두 종류의 지식 사이에 있는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일에 대해 자연적이고 관념적인 지식이 영적이며 구원에 이르는 지식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어떤 점에서인가?

다음 말씀을 생각해 보라.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이 말씀에 대한 해설을 시도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이를 다음과 같은 대조에 예증적으로 응용하고자 한다. 어떤 사람이 수년간 설교를 들었다 하자.

그러나 영혼이 실제로 자기 속에 나타내신 그리스도를 접했을 때(갈 1:16), 그 사람은 일찍이 그에 대해 풍문으로 들었던 지식과 살아 있는 실체로서 영혼에 분명하게 임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영적인 인식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인간의 문제로 유추하여 더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한 어린아이가 눈이 먼 채로 태어났다. 그는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눈을 그를 위하여 쓰고자 하였고 그에게 자연의 아름답고 경이로운 것들을 설명해 주려고 애썼다.

그들이 말로 설명한 그림들로 인하여 그는 많은 것들에 대해 명료한 개념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전문가의 성공적인 개안수술을 집도하여 그가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라.

장엄한 일몰 광경을 자신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것은 전에 가졌던 선입견과 너무도 엄청나게 다르리라!

친구들이 일몰 광경을 아무리 세밀하고 정확하게 묘사하였더라도 그가 스스로 그 장면을 바라보았을 때와는 얼마나 생생하게 대조되겠는가!

그와 똑같이 실제적인, 그와 똑같이 근본적이고 생생한 차이가 진리에 대해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지식과 진리의 능력에 대한 개인적인 만남 내지 체험 간에 있다.

앞의 유추해석을 좀 더 진전시켜 보기로 하자.

눈이 먼 동안에 그는 친구들이 해지는 광경의 웅장함에 대해 과장하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 그 장면을 보게 되는 즉시, 그는 어떤 시인의 시구나 어떠한 화가의 붓으로도 그 광경을 정확하게 묘사해 낼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는 혹 친구들이 단지 그들의 상상을 이야기하거나 꾸민 이야기로 자신을 즐겁게 하려 애쓰는 것이 아닌지 생각하면서 그 자체에 대해 의심하는 마음을 품기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반신반의는 끝이 났다. 거듭난 영혼과 그리스도도 서로 그러하다. 한 때 죄로 어두워진 그의 눈이 열려져 속죄양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고대의 한 기자와 마찬가지로 소리 높여 외친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에 이르는 지식은 영혼을 매료시키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가장 고상함에 비하여 다른 모든 것을 쓸모없는 것으로 여길 정도로(빌 3:8) 그에게 마음을 쏟게 한다.

어느 라폴란드[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최북부 지역] 사람이 꿀에 대해 읽을 기회가 있다 하자.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가 실제로 알게 되는 것은 그것을 먹어보고 난 후이다. 영혼이 하나님을 참으로 알게 되는 것도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벧전 2:3)을 때이다.♡

형식주의자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알고 있을 뿐이지만, 그리스도인은 저희 마음의 거짓됨과 감추어진 은밀한 죄들을 하나님께서 간파해 내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전지하심을 내적으로 체험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지식의 한 종류는 이론적이고, 다른 한 종류는 실제적이다. 하나는 단지 관념적일 뿐이며, 다른 하나는 체험적이다. 하나는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것이며, 다른 하나는 직접적으로 전달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육적인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 하지만 영적인 지식은 겸허하며, 영혼으로 하여금 그 영적 무지를 괴롭도록 의식하게 한다.

시편 119편에서 다윗이 "나를 가르치소서"라고 여덟 번씩이나 간구하고 있음을 눈여겨 보라. 육적인 지식은 아무런 영적인 열매도 맺지 못한다. 그리고 만일 거룩한 생활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영적 지식에 대해 자랑하는 것은 헛될 뿐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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