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산상수훈 293] 본문
참된 신앙고백 2(마 7:21-27)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앞 장에서 우리는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을 모색했었다. 즉 거기에 쓰여진 용어의 의미를 설명하고,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해당되는 바를 지적하며 우리 자신에게 적용시켜 보고자 하였다.
이 기회에 우리는 이 말씀을 주제적인 방법으로 좀 더 다루어 보았으면 한다. 명백하게 이 점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신분에는 부적당하게 단순히 입술로만 고백하는 행위를 주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에 있어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치명적으로 잘못 생각해 오고 있는 까닭에 우리는 한 장을 할애하여 이 사항을 주제로 다루어 보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형식주의자들이 도달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며, 그들이 그리스도의 나라에 실제로는 들어가지 못하면서 얼마나 가까이까지 접근해 나가는지 지적하고자 한다.
우리가 주로 고려하는 자는 고백자들의 세 번째 부류로서, 미혹된 자들이다. 우리는 네 가지의 간단하면서도 기본적인 관점에서 그들을 조사하고 검토해 보고자 하며, 그리고 그들 각자가 그 점에 있어 거듭난 자의 체험과 정당한 몫에 미치지 못함을 증명하고자 한다.
1. 지식
영적인 일과 하나님의 일에 대한 지식에는 두 가지 다른 등급, 혹은 유형이 있으며 그들 사이에 있는 차이점은 단계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또한 종류에 있어서의 차이이고, 근본적이면서도 지극히 중요한 차이임이 성경의 가르침에서 명백하다.
거기에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구원에 이르는 지식이 있는 반면에 또한 그에 대한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비록 정확하며 광범위한 것이기는 할지라도) 지식이 있다.
따라서 자신의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모든 사람은 이들 두 가지 유형의 지식 사이에 있는 근본적인 차이에 관해 올바르게 가르침 받아야 하며, 그래서 스스로를 부지런히 성찰하여 그 지식들 중 어느 것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 보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
위와 같은 구별은 우리들이 마음대로 하는 임의적인 것이나 상상적인 것이 아님을 성경의 많은 구절들에서 명백하게 알 수 있다.
바울 사도가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1:6) 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분명히 구별되는 언어를 구사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단지 이론적으로만 깨닫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이것이 구원에 이르는 지식이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오히려 우상 숭배자가 되어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았을 경우(롬 1:21-24) 그것은 하나님을 알기는 해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지식이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고전 13:2).
이런 일이 실제로 있을 수 있다. 자연인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대다수가 이해하는 것보다 진리에 대한 좀 더 온전하고 좀 더 지적인 파악을 획득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가 만일 우수한 지력을 부여받았다면, 그리고 훌륭한 교육을 받아왔다면, 만일 그가 성경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면(예술 내지 과학의 한 분야에 대해 하듯이), 그렇다면 그는 성경의 문자적 지식이나 개념적인 이해에 있어 전문가와 같이 숙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인내심 있는 근면으로 그는 성경이 본래 쓰여진 언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능통할 수 있으며, 정통적인 신학 서적들을 읽고 또 읽음으로써 진리에 대한 전체적 교리체계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유능한 주석가들의 의견을 참고로 하여 해석이 곤란한 구절들에 대한 조명을 받을 수도 있다. 그는 죄악과 경건의 비밀에 대한 이해에조차 도달할 수 있으며, 그리하여 참된 신앙에 있어서 아주 건전하다.
그리고 만일 그가 유창한 언변가라면, 아무도 이치를 따져 그의 정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일에 대해 강론할 수 있다.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가 본받을 점이 많고 유익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또한 설교를 들음으로써 말씀에 대해 폭넓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매우 많이 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종교적인 지식을 획득하려는 물릴 줄 모르는 호기심과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함으로써 그리고 그들이 들은 것에 대한 세심한 주의와 좋은 기억력의 도움으로 영적인 것에 대해 잘 가르침 받게 된다.
그리고 특히 이것은 상당한 양의 경건한 저술들을 읽음으로써 보충되어진다. 거듭나지 않은 자들일지라도 복음의 전 개요에 대한 명확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명석한 정신을 부여받은 자들은 종종 하나님의 자녀 되는 많은 이들이 이해하는 것보다 진리의 심오한 측면에 대해 좀 더 잘 파악해 낸다(왜냐하면 하나님의 택하신 자 가운데는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기'[고전 1:26]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구원받은 자들보다도 진리의 보고 속으로 좀 더 깊이 파고 들어가 더욱 위대한 깨달음을 성취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에 만족해 할 만큼 그렇게 확연하게 사물을 파악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을 확신시킬 정도로 명료하게 그들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 그렇다. 그들은 자신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잠잠하게 만들 만큼 그렇게 힘있게 그들의 신념을 옹호하고 효과적으로 주장할 수 있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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