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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292] 본문
참된 신앙고백(마 7:21-27)
넷째로, 위선적인 신앙고백자들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이 부류에 속하는 자의 수는 앞에서 언급한 부류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적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삶이 지속되는 한 어떤 희망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 때문에 아무것도 알아볼 수가 없다. 위선적인 신앙고백자들은 일부러 어떤 역할을 맡아 일한다. 즉 그들은 의식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한다.
그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들의 동료들로 하여금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믿도록 하고자 몹시 애를 쓴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우선 한 두 종류의 단체에 소속한다. 그런 다음에는 그들의 고백이 공허하다는 것을 발견하거나 또는 자신이 미혹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나 진실성이 없어서 그들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는 것을 시인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점차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신앙심이 있다고 주장하기가 고통스러워진다.
그들은 일련의 단조롭고 형식적인 의무수행을 하는 데에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한 외양을 꾸미거나, 그를 위한 일을 도모하는데 있어서 열성적인 것 같은 태도를 꾸민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설명해온 네 가지 부류 중에서 비길 바 없이 가장 타락한 종류이다. 그러한 행동은 불합리한 것인데, 그에 못지않게 경멸받아 마땅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속으실 리가 없으시다. 그리고 그의 전지하심을 불명예스럽게 해드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극심하게 행사된 모욕이다. 그 위선자들이 받을 몫은 '바깥 어두운데' 로 쫒겨나 거기서 이를 갈며 우는 것이다.
다섯째로, 참된 신앙고백자들이 있다.
이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여기 은혜의 왕국에서의 축복을 누리며 장차 영광의 왕국의 축복도 누리게 될 사람들이다. 그는 행실과 행위에 있어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이다.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해야 하겠다. 즉 여기에서 아버지의 뜻이란 무엇을 의미하며, 그의 뜻을 행하는 것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의 근본적인 요소는 다음과 같은 말씀 속에 드러나 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마 17:5). 이 말씀이 응해지는 곳이라면 그 밖의 다른 모든 일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존 브라운).
아버지의 뜻은 성육신하신 말씀에 의해 완전하게 드러나 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최후의 대변자이시기 때문이다(히 1:1, 2). 아버지의 뜻은, 우리가 우리 죄를 버리고, 그의 아들을 믿으며, 그의 멍에를 지고, 그를 따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의 실천은 하지 않으면서 그를 주님이라고 부른다면 대단히 끔찍한 조롱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 되심은 너무도 완전하고 친밀한 것이어서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라"(마 7:24; 눅 6:46 참조).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분명히 그것은 그 뜻을 따라 온전하고 결함 없이 실천하는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온전함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 우리의 표준이기는 하지만 현세의 삶에서 그처럼 탁월한 경지에 도달한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마 5:48).
그것은 나의 마음과 뜻을 그리스도의 주장에 굴복시켰다는 것을 의미하며, 진실로 그가 나의 "왕이 되시어"(눅 19:14) 나의 생활을 주관하시기를 열망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나를 그의 권위에 복종시키고, 그 권위가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중심적인 경향이며, 범사에 그를 기쁘고 영광스럽게 해드리려고 항구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내가 외적으로든지 내적으로든지 진정으로 그의 거룩한 형상을 닮고자 목표하는 것이며, 그가 노하시는 일들을 했을 때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슬픔이 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것은 내가 나의 생각과 사랑과 행동이 진실로 그의 계율에 의해 통제되기를 구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외적으로 죄가 없는 그런 복종이 아니라 진정으로 따르는 복종이다. 그것은 강요되었으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인하여 고무되어 따르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명령을 외적으로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 을 뜻한다"(엡 6:6).
Arthur W. Pink 산상수훈 p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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