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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287]

En Hakkore 2024. 8. 1. 12:28

참된 신앙고백(마 7:21-27)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1-27)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1절).

우리 주님께서는 이 말씀으로서 그 유명한 설교의 열두 번째이자 마지막 부분을 시작하셨다. 이것은 아마도 그 설교 중에서 가장 엄숙하고 중대한 부분인 것 같다.

여기 우리의 어떤 거짓으로도 속일 수 없는 분이 진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가차 없는 요구를 알려주신다.

여기 마침내 온 세상의 심판자로서의 직분을 수행하실 분이, 장엄한 심판 날에 자기 자신을 속이고 다른 사람을 미혹시킨 모든 자들의 진상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신다.

그의 전능하신 눈 앞에서 모든 일이 숨김없고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의 모든 생각과 상상을 다 아시는 분께서, 입술로만 예배하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제아무리 그럴듯한 행동일지라도 생명력 있고 실제적인 경건함이 결여되어 있으면 무가치한 것이라고 분명히 밝혀주신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유대인'에게 해당되는 것이라느니 '이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이라느니 하며 제외시키는데, 이 구절들을 신중하게 숙고할수록 우리는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 현대인들은 마태복음 5-7장의 말씀을 하나님 말씀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가장 싫어하는데, 이 구절들이야말로 다른 어떤 구절보다도 더욱 절박하게 필요한 말씀들이다.

오늘날처럼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많았던 적도 없었으며, 오늘날처럼 참된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적었던 적도 없다.

위대한 종교개혁이 일어나 그 사태를 좀 더 나은 현상으로 크게 변화시키긴 했지만 루터와 칼빈의 시대 직전에도 기독교계에는 '외양으로만 경건' 할 뿐 그 변화시켜주는 참된 힘을 깨닫지 못한 자들이 넘쳐 있었다.

사실 하나님의 분노가 그들 위에 머무르게 될 때  그들만은 무사하리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대단히 많이 있는데, 기독교 시대의 역사에 있어서 그랬던 적이 또 있었던가 진정 의심스럽다.

우리 주님은 산상설교의 이 종결부분을 통하여 그런 일들에 대하여 충실하게 설명하심으로써 그들의 그릇된 생각을 깨우쳐 주고 있는데, 이 구절들이야말로 그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좋은 말씀이다.

이 구절들과 문맥의 관계는 쉽사리 발견된다. 좀 더 먼 문맥을 취해보면 이 마지막 부분은 그 설교 전체의 적절한 결론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설교가 군중들에게 행해진 것이라고 기억하는데(마 5:1; 7:28), 좀 더 직접적으로 그의 '제자들' 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적절한 클라이막스였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시인하는 자들의 특성을 설명하시는 것으로써 시작하여 영원한 판결을 받을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으로 끝마쳤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그의 주님의 모범을 본받아 사도직을 수행하였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가 사람들에게 설교했던 것은 한편으로는 '사랑' 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이끌었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벨릭스 앞에 서서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그 통치자가 두려워 하였다(행 24:25).

슬프게도 이 타락한 시대에 있어서는 사람들을 그렇게 충실하게 대해 주는 일이 참으로 적다. 즉 그렇게 엄밀하게 양심을 성찰하는 일도 참으로 적으며, 무서운 심판이 불경건한 자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주는 일이 거의 없고, 지명적인 자기 만족에 빠져 있는 자들을 두려워 떨게 하는 일도 참으로 드물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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