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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240]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240]

En Hakkore 2024. 7. 29. 11:54

황금률(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 한 구절이 우리 주님의 설교의 아홉 번째 부분을 이루고 있다. 이 구절의 주제는 공평과 공의인데, 우리는 서로를 향하여 이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

이 설교의 간결성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말하지 못한 방법으로 말씀하신 그분의 신성한 지혜를 입증하는데, 그 이유는 그 누구도 그렇게 적은 말로 그토록 많은 내용을 함축해서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규율에서 강조하고 있는 방법은 신약과 구약,   두 시대의 근본적인 통일성을 잘 나타내 준다. 즉 복음은 율법의 무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동등하게 굳게 해준다(롬 3:31)

본문의 구절을 분석해서 보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로, '그러므로' 라는 말로 보아서 이것이 그 문맥의 결론 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로, 이것은 완전히 이기심이 없는 상태의 표준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는 계명이다. 즉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셋째로, 여기에서 그 표준을 추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즉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서두의 '그러므로' 라는 말은 앞의 부분에서 그리스도께서 무엇에 대하여 말씀하셨는가를 되돌아보게 한다(7-11절).

여기에서 우리는 거룩한 선생께서 기도의 특권과 의무는 결코 분리할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인간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더 잘 이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그가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셨던 것을 실제적인 면에서 적용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공의의 율법이 기도의 율법에 덧붙여지는 것이야말로 타당한 일이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의 교제에 진실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기 때문이다(사 1:15, 17; 58:6,9; 슥 7:9, 13).

만일 우리가 공평할 일을 행하지 않고 사람들에게도 사랑받고 칭찬을 들을 만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것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경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정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헌신은 위선일 뿐이다"(매튜 헨리).

오늘날의 강단에서 이러한 일들을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즉 대체로 우리가 자기의 동료들을 어떻게 대접하는가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우리의 간구에 대한 응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경건한 행위에 있어서 진실하기를 요구하실 뿐만 아니라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모든 의무도 양심적으로 이행하기를 요구하신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그런데 이 두 구절의 관련성은 황금률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이 인간들로부터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대접을 받기 원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기독교의 가르침이 이교의 원리보다 훨씬 더 차원이 높다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대접받기를 기대하는 만큼 우리의 이웃에게 베풀어야 한다♡

우리가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면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이기적으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대하게 대해 주실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바로 그런 일에서 우리도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우리가 인색하게 뿌리든지 관대하게 뿌리든지, 뿌리는 대로 거두게 될 것이다(고후 9:6).

그러므로 내가 완고하고 엄격하면서 베풀어 주는 것 이상의 최고의 대우를 요구한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대하실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또한 우리가 동료들로부터 정당한 대접을 받으려면, 우리의 기도생활의 정당한 규칙이 필요불가결하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세상을 향한 무절제한 모든 감정은 인간들에게 과도한 실천을 충동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신 것을 덧붙여 주신다는 그의 약속을 신뢰하면서, 날마다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한다면, 우리는 탐욕스럽거나 불의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양과 같이 그의 목자의 도움에 의지하지 않고서 세상에서 먹이를 찾는 맹수와 같이 된다면, 우리는 가끔 정당하지 않은 것을 행하려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며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앤드류 풀러).

오직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함으로써만(때때로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웃을 향해 적절하게 행동할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인간들과 교제할 때에, 은혜와 의의 영이 작용하게 되는 것은 오직 빛과 사랑이 되시는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제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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