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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228] 본문
은혜를 구하는 일 2(마 7:7, 8)
주님께서는 고맙게도 간결한 기도의 모형을 제시해 주심으로써 제자의 이 요청에 대답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가정기도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그때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것을 예상하셨던 것 깉다.
즉 하나님은 실제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는가? 이 거룩한 일을 실행하는 것의 실제적인 의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내적인 이익을 위해서만 계획된 것일까? 혹은 위로부터 실제로 복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그것이 우리 안에서 작용하므로써 일으켜 주는 이익으로 끝나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손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것일까? 그 대답은 비록 비유의 상태이긴 하지만 대단히 분명하게 있다.
귀찮게 조르는 것이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지극히 분명한 것처럼 열렬하고 끈기 있게 구하면 확실히 하나님의 응답을 들을 것이다. 하늘의 시온좌를 향해 간청하는 것은 헛된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허공 중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단순히 우리 자신을 소모해 버리는 일이 아니다. 구하면 얻을 것이며 찾으면 찾을 것이며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과 믿음의 기도 사이, 즉 땅에서 올라가는 요청과 하늘에서 내려오는 은혜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누가복음 11장의 비유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이상하다.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을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롯 벗됨으로 인하여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한다면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5-8절).
이 비유는 기도의 필요성과 굽히지 않고 끝까지 기도해야 하는 교훈 이외에 그보다 좀 더 많은 어떤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것은 기도할 때 열렬하게 하라는 격려이다. 그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자.
요청을 받은 사람은 그에게 제시된 그 요청을 왜 귀찮게 여겼는가? 그것은 가까운 친척이 아니라 친구가 그 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탄원자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을 위해서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부탁이 절박하고 긴급하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몇 조각의 빵 문제였기 때문이다. 누가 한밤중에 다른 사람을 위한 빵을 빌리기 위하여 남의 집을 두드리려고 생각하겠는가?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상황 아래에서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의 본성적인 경향을 보여주신다.
"나를 괴롭히지 말라...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그러나 거듭하여 그 요청을 반복했기 때문에, 그리고 탄원자가 거절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친구라는 관계 때문이 아니라 귀찮게 졸랐기 때문에 탄원자는 그 요청한 바를 얻은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여기에서 형식적으로 명확한 결론을 내리셨긴 하지만 - 13절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 믿음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그리스도인이 탄원을 드리고 있는 상태는 '친구' 이상의 관계, 즉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이신 것이다. 그는 자녀들의 다양한 필요를 채워 주시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아니하시며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신다"(약 1:5).
우리가 그에게 가기에 적절하지 않은 시간이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졸지도 아니하고 피곤하지도" 아니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언제든지 은혜의 보좌를 향해 말씀을 드려도 좋다. 게다가 우리의 가장 작은 필요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우리는 특출하고 중요한 사람에게 사소한 것을 부탁하는 일을 망설이게 된다. 왜냐하면 그가 그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는 말씀은 성도에게 보낸 왕의 초청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관련된 필요만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친구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도록 주님께 간청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를 영광스럽게 해드리고, 그가 모든 것의 통치자시요 우주적인 공급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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